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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DC 】 치안

나스티시즘 2023. 9. 20. 04:39

《 치안(治安) 》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ㆍ보전함."
 

【 신뢰와 정의 사회 형성 】

 
https://youtu.be/k2xou1gvt08

https://youtu.be/v9sOD9s1x5I

https://youtu.be/YFQ8AZ0WIso

https://youtu.be/-bBMPZHEY_4

■ https://youtu.be/pHCeV56KQdo

https://youtu.be/iNr4L8r-pdw?si=VZ2YEFvlbhNBUN6T

https://youtu.be/Xe6OOB0mL_k?si=y_9WSmLMPw54IFsi

https://youtu.be/enLxQ2XtNpU?si=1m1dcYp14LP0AqU3

https://youtu.be/ZMHrdJTvSxY?si=hpvp-vLjVjSuTAPl

https://youtu.be/MkZdMOTI-fU?si=JsFGggO1RuDy1MiM

https://youtu.be/QpBPEcFj3e8?si=YbUuSZ1XmTBl4S5N

https://youtu.be/ThhBgU5YuSA?si=TvUPfQrZCNR7I_-k

■ "있을 수 있는 미래로부터 - 범죄자가 자신이 만든 법을 존중하고 자신을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힘, 즉 자신이 입법가의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감정으로 자지 자신을 고발하고 자기 자신에게 받아야 할 벌을 공적으로 부과하는 상태는 생각될 수 없을까? 그가 법을 위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범행을 극복한다. 그는 솔직함, 위대함, 평온함을 통해 범행을 불식할 뿐만 아니라 공공에 기여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미래에 있을 법한 범좌자일 것이다. 이러한 범죄자는 당연히 미래의 입법, 즉 '나는 일의 대소(大小)를 불문하고 나 자신이 만든 법에만 굴복한다'는 근본 사상의 입법도 전제한다. 많은 실험이 여전히 행해져야만 한다! 많은 미래가 여전히 어둠을 똟고 그 모습을 나타내야만 한다."

- 니체 -
 



【 체내 삽입형 기기 】

 
상업화된 최초의 (인체) 삽입형
모바일폰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기기에 연결되고, 이런 기기들은 점점 더 인체에 연결될 것이다기기는 우리 몸에 차는 것이 아닌 체내에 삽입되어 의사소통을 돕고 위치와 행동을 모니터링하고 건강 기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심박조율기와 달팽이관 삽입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다양한 의료 기기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체내 삽입형 기기는 질병의 인자를 감지해 개개인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고, 모니터링 센터로 데이터를 전송하거나 자동으로 치료약을 인체에 투여하도록 한다. 전자문신(스마트 타투, smart tattoo)과 기타 새로운 유형의 칩은 신원 확인과 위치 확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체내에 삽입된 기기를 통해 우리는 '내장된built-in'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그간 말로 표현해야 했던 내용을 생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생각 혹은 감정이 뇌파와 기타 시그널을 통해 전달될 가능성도 있다.
 

《 긍정적 효과 》

 
실종 아동이 감소한다.
건강에 관한 더 많은 긍정적 결과가 나타난다.
개인의 자족自足성이 증대한다.
④ 의사결정이 더 나아진다.
이미지 인식이 가능해지고,
개인 데이터가 활용 가능해진다.
(우리를 '옐프yelp'하게 만들 익명 네트워크
- yelp.com 웹사이트의 개념을 차용한 표현.
해당 사이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직접 리뷰를 주고받으며,
모든 기록은 내장된 칩을 통해 온라인으로 저장, 공유된다.)
 

《 부정적 효과 》

 
사생활 침해와 감시 가능성이 있다.
② 데이터 보안성이 저하된다.
③ 현실도피와 중독이 생긴다.
④ 주의력결핍장애와 같은
방해요소(increased distractions)가 더 발생한다.
 

《 예측 불가능한 영역 》


① 수명이 연장된다.
② 인간 관계의 본질에 변화가 생긴다.
③ 인간 상호작용과 대인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실시간 신원 확인이 가능해진다.
문화적 변화(영원한 기록)가 나타난다.
 

《 현재 동향 》

 
ⓛ 전자문신은 멋져 보일 뿐 아니라,
자동차 문 열기, 손짓으로 폰 비밀번호 입력하기,
신체 기능 추적하기 등 유용한 업무도 수행할 수 있다.

② 미래 혁신산업 분석기관인 'WT VOX'의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안테나가 장착된 컴퓨터 여러 대의 집합으로 각 컴퓨터의 크기가 모래 한 알보다 작은 스마트 더스트(Smart Dust)는 인간의 신체 내에서 뭉쳐져 복잡한 내부 과정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네트워크 상태로 스스로를 구조화한다. 이 더스트 뭉치가 초기 암세포를 제압하고, 상처의 통증을 완화시키며, 중요한 개인정보를 암호화하여 해킹하기 어렵게 저장해준다고 상상해보자. 스마트 더스트를 활용하면 의사는 환자의 몸을 개복하지 않고도 수술할 수 있고, 개인의 나노 네트워크로 암호를 풀지 않는 이상, 정보는 우리의 몸 안에 암호화되어 깊숙이 저장된다."

③ 제약회사인 프로테우스 바이오메디칼(Proteus Biomedical)과 노바티스(Novartis)가 공동으로 개발한 '스마트 필(smart pill)'에는 생분해성의 디지털 기기가 부착되어 있어 신체가 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모바일폰으로 전송해준다.

 
【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 】
 

■ 인터넷과 정보에 대한 통상적인 접근이 미래에는 더 이상 선진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니라, 깨끗한 물을 누리는 것과 같은 기본적 권리가 될 것이다. 무선 통신기술은 다른 공공 사업(전력, 도로, 상수도 등)에 비해 기반시설 구축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업에 비해 빠른 속도로 전파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구 반대편의 정보에 접근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콘텐츠 창작과 보급은 그 어느 때보다도 쉬워질 것이다.

 
《 현재 동향 》
 

■ 아직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40억 인구에게 인터넷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 즉 '접근 가능성'과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인터넷에 접근이 불가능한 나머지 전 세계 인구에게 인터넷 접근을 가능케 하려는 움직임이 현재 징행 중이다. 전 세계 모바일 사업자들은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확산시키고 있다. '스페이스엑스(SpaceX)'는 새로운 저비용 위성 네트워크에 투자하고 있다.

【 추적과 감시 】

(Contact Tracing,
Contact Tracking and Surveillance)


■ 코로나19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했던 국가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디지털 기술이 코로나19 대응에 도움이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성공적인 접촉자 추적이 코로나를 막는 성공적인 전략의 핵심임이 입증되었다. 봉쇄가 코로나 바이러스 '복제 비율(reproduction rate : 한 사람이 새로운 감염자를 만들어낼 기댓값)'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것만으로 팬데믹 위협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게다가 봉쇄는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큰 경제적,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효과적인 치료법이나 백신 없이는 바이러스와 싸우기 매우 힘들며, 그런 치료법이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 전염을 줄이거나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광범위한 검사에 이은 확진자 격리, 접촉자 추적, 그리고 감염된 사람과 접촉한 사람의 검역 조치다.
 
지금부터 보게 되겠지만 이 과정에서 기술은 공중보건 공무원들이 코로나19 확진자를 신속히 찾아냄으로써 확산 전 반발을 억제할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나게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접촉자 추적은 코로나19에 대한 공중보건 차원의 대응에 꼭 필요하다. 접촉자 추적을 영어로 보통 '콘택트 트레이싱(contact tracing)'이나 '콘택트 트래킹(contact tracking)'이라고 하는데, 두 용어를 혼용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의미가 약간 다르다. 예를 들어, 트래킹 앱 같은 단어에 사용됐을 때처럼 트래킹은 GPS 좌표나 이동통신 이용 위치가 모인 지오데이터(geodata)를 통해 사람의 현재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는 걸 말한다. 이와 달리 트레이싱은 블루투스를 쓰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접촉을 찾아내듯이 일정 시간 경과 후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는 뜻이다. 둘 다 코로나19 확산을 완전히 멈출 수 있는 기적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지역사회나 가족 모임 같은 슈퍼 확산 환경에서 코로나19가 발발할 경우 즉각적으로 경보를 울리는 작용을 해 조기 개입을 통해서 확산을 제한하거나 억제할 수 있게 해준다.
 
가장 효과적인 추적 형태는 단연코 기술을 이용한 추적이다. 기술은 휴대폰 사용자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을 역추적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실시간 이동 경로를 추적해서 엄격한 봉쇄 조치를 시행하고 감염자 주변의 다른 모바일 사용자에게 감염자와의 접촉 위험을 경고해줄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추적이 공중보건 측면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사생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은 이제 그닥 놀랍지 않다. 코로나19 초기 단계에서 많은 국가들(대부분 동아시아 국가들이지만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도 포함된다)은 여러 다른 형태의 디지털 추적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코로나19 감염자의 이동을 막고, 후속적인 격리나 부분적인 봉쇄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과거 전염 경로를 역추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시간 이동 추적 방식으로 전환했다. 한국, 중국, 홍콩은 처음부터 아예 사생활 침해적인 디지털 추적 조치를 강제를 시행했다. 이들 나라들은 동의 없이 모바일과 신용카드 데이터를 통해 개인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로 결정했고 한국은 심지어 비디오 감시 방법도 동원했다. 또 홍콩 등 일부 국가들은 감염 위험이 큰 사람들에게 경고해주기 위해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과 격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전자 팔찌 착용을 의무화했다.
 
다른 나라들은 위치를 추적하고, 규정 위반 시 공개적으로 찾아낼 수 있게 격리된 개인은 휴대폰을 소지하게 하는 '절충안'을 채택했다. 가장 칭찬받고 화제가 된 디지털 추적 솔루션은 싱가포르 보건부가 만든 코로나19 예방 및 감염자 동선 추적에 활용하는 모바일 앱인 '트레이스투게더(TraceTogether)'다. 이 앱은 사용자 데이터를 서버가 아닌 휴대폰에 보관하고, 익명으로 로그인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효율성과 사생활 침해 우려 사이에 '이상적인' 균형을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접촉자 탐지는 최신 버전의 블루투스에서만 작동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휴대폰에 효과적인 탐지를 위해 필요한 블루투스 기능이 갖춰져 있지 않은, 디지털화가 덜 진행된 많은 선진국에서는 앱 사용이 명백히 제한된다. 블루투스는 약 2m 이내에서 앱 사용자가 다른 앱 사용자와 물리적으로 접촉했는지를 정확하게 식별하고, 코로나19 전염 위험이 생기면 앱은 해당 접촉자에게 경고해준다. 단, 이때 저장된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보건부로 전송해야 하나 접촉자의 익명성은 유지된다. 따라서 트레이스투게더는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지켜주고,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오픈소스로 코드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생활 보호론자들은 여전히 사생활 침해 위험이 있다며 트레이스투게더 사용을 반대한다. 한 나라의 전체 인구가 그것을 다운받고, 이후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한다면 트레이스투게더는 결국 대부분의 시민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이버 침입, 시스템 운영자에 대한 신뢰 문제, 데이터 유지 시점이 모두 사생활과 관련된 추가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다른 선택지도 존재한다. 이는 주로 공개되고 검증 가능한 소스 코드의 가용성 및 데이터 감독과 보존 기간에 대한 보증과 관련된다. 특히 많은 시민들이 코로나19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생활을 포기하는 상황이 될까 두려워하는 EU에서 공통적인 기준과 규범이 채택될 수 있다. 그러나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말한 것처럼 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잘못된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기술로도 정말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그들이 사적 목적을 위해 데이터를 쓰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련의 지침을 만들었고, EU 회원국들과 함께 그것을 연장통에 옮겨놓아 당신이 블루투스 기술을 써서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는 앱을 자발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다. 당신은 기술을 이용해 바이러스를 추적할 수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기술이 바이러스 추적 외 다른 어떤 목적도 개입시키지 않았다고 믿게 된다. "기술을 사용할 때 그것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라거나 "이것이 새로운 감시 시대의 시작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진심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바이러스 추적용이고, 이것이 개방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재차 말하지만, 우리는 지금 빠르게 움직이고 매우 변동성이 큰 상황에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보건 당국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이동 경로와 접촉자를 역추적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4월 나온 애플과 구글의 발표는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무엇보다 감시를 두려워하는 사회에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려준 것이다. 휴대폰을 소지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앱을 다운로드하고 데이터 공유에 동의해야 하는데, 양사는 사생활 보호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보건 기관에는 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자발적인 접촉자 추적 앱에도 문제가 있다. 이 앱이 사용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더라도 참여 수준이 충분히 높아야만 보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주의적인 권리와 계약 의무 이면에 심오하게 얽혀 있는 현대 생활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는 집단행동과 관련된 문제다. 사람들이 시스템을 감시하는 정부 기관에 개인 데이터를 제공하기를 꺼린다면, 어떤 자발적인 접촉자 추적 앱도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누구라도 앱 다운로드를 거부함으로써 감염 가능성, 동선, 접촉자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시민들은 신뢰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그 앱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때는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변수다. 2020년 6월 말 현재,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추적 앱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보급한 나라는 30곳도 안 된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가 애플과 구글이 개발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앱을 출시했고,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은 자체 앱을 개발하기로 함으로서 정보 처리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문제가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기술적 문제와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우려가 앱의 사용과 채택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영국은 기술적인 결함들의 등장과 사생활 보호 운동가들의 비난으로 정책을 선회해 국내에서 개발한 접촉자 추적 앱을 애플과 구글이 제공하는 모델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노르웨이는 사생활 침해 우려로 앱 사용을 중단한 반면, 프랑스에서는 출시 3주 만에 스탑코비드(StopCovid) 앱의 보급을 중단했다. 앱을 설치한 사람이 19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채택률이 낮자 그것을 깔았던 사람도 삭제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전 세계에 약 52억 대의 스마트폰이 존재하는데, 스마트폰은 누가 어디에서, 그리고 종종 누구에 의해 감염되는지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같은 전례 없는 기회는, 미국과 유럽에서 봉쇄 기간 중 실시된 다양한 조사들이 왜 공공 기관의 스마트폰 추적을 선호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지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정책과 그것의 실행을 둘러싼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 디지털 추적이 의무적이어야 하는지 자발적이어야 하는지, 데이터가 익명으로 수집되어야 하는지 개인적 기반에서 수집되어야 하는지, 정보가 사적으로 수집되어야 하는지 공개적으로 드러나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이 다양한 흑백논리의 질문들인 이상, 모두가 통합된 디지털 추적 모델에 동의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모든 질문들과 그들이 야기할 수 있는 불안감은 전국적 재개방 초기 단계에서 나타난 직원들의 건강을 추적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더욱 커졌다. 질문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고, 다른 가능한 팬데믹에 대한 두려움이 고개를 들면서 계속해서 더 적절하게 변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고 사람들이 일터로 복귀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은 감시를 더 강화해나가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좋든 나쁘든, 기업은 직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때로는 기록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열화상 카메라로 체온을 재는 것부터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떻게 준수하는지를 앱을 통해 모니터링하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이것이 심각한 규제와 사생활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감염(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을 져야 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디지털 감시 수위를 높이지 않고서는 경영을 재개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부인할 것이다. 감시 강화의 명분으로 건강과 안전을 들먹이는 것이다. 국회의원, 학계, 노동조합원들은 코로나19 위기 이후와 심지어 마침내 백신이 개발됐을 때에도 감시 도구가 계속 유지될 가능성에 대해 부단히 우려를 제기한다. 일단 감시 시스템이 설치되면 고용주는 그것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시가 주는 간접적 혜택 중 하나가 직원들의 생산성을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자 신분증을 요구하고, 직원이나 방문객의 출입을 기록하는 등의 새로운 보안 조치가 표준화되었다. 당시에는 이런 조치들이 극단적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어디서나 취해지고 있는 '정상적' 조치들로 간주된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시행된 기술 솔루션도 그렇게 될 거라 우려하는 분석가, 정책 입안자, 보안 전문가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앞에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한다.
 

【 디토피아 위험 】

(The Risk of Dystopia)

 
정보통신 기술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과 모든 사회 참여 형식에 스며들면서 디지털 경험도 행동을 감시하고 예측하는 게 목적인 '상품'으로 바뀔 수 있다. 디스토피아 도래의 위험은 다음 관찰 결과에서 비롯된다. 지난 몇 년 동안, 디스토피아는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같은 소설에서부터 TV 시리즈물인 <블랙 미러(Black Mirror)>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학계에서는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 등 학자들의 연구에서 디스토피아란 용어가 등장한다. 주보프는 저서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에서 '감시 자본주의'가 지식과 지식이 있어야 생기는 힘의 반민주적 비대칭성을 만들어냄으로써 경제, 정치, 사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며 고객들을 데이터 소스로 재창조하고 있는 데 대해 경고한다.
 
앞으로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공중보건이 주는 혜택과 사생활 손실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는 진지한 고민거리가 되면서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가하는 위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로나19로 생사가 걸려 있는 상황에 기술이 가진 힘을 통해서 우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게 되려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선 사람들이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고 공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정당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다가 위기가 끝났을 때 자기 나라가 갑자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이런 사고 과정은 낯설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와 기업 모두 시민과 직원들을 감시하고 때로는 조종하기 위해 정교한 기술을 점점 더 자주 활용해왔다. 사생활 보호 옹호자들은 우리가 바짝 경계하지 않으면 코로나19가 감시 역사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술이 개인적 자유를 억압하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단순명료하다. 다름 아니라 9.11 테러 공격 이후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더 광범위하고 영구적인 보안 활동이 시작됐듯이, 공중보건이란 명목으로 팬데믹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일부 사생활을 포기시킬 거란 주장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불순한 목적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용도가 바뀔 수 있는 새로운 감시 권력에 희생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위치 탐지 스마트폰과 얼굴 인식 카메라, 감염원을 확인하고 질병의 확산을 준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 등을 활용해 능동적인 건강 감시 시대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국가가 기술의 힘을 통제하고 감시를 제한하기 위해 취하는 온갖 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이 정도로 걱정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다), 일부 사상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성급히 내리는 몇 가지 선택들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한다.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한 기사를 통해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 권한 강화 사이에서 근본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자세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감시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10년 전 공상과학소설에 나왔을 법한 일이 오늘날엔 낡은 뉴스가 됐다.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진행하는 '사고 실험'을 한다고 치고, 모든 시민이 하루 24시간 내내 체온과 심박수를 감시하는 생체 팔찌를 착용하도록 요구하는 가상 정부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로 인해 얻은 데이터는 저장되어 정부 알고리즘에 의해 분석된다고 치자. 알고리즘은 심지어 당신보다 먼저 당신이 아픈지를 알 것이고, 또 당신의 행선지와 만난 사람도 알 것이다. 감염 사슬은 대폭 단축되고 심지어는 완전히 끊길 수도 있다. 그러한 시스템은 틀림없이 수일 내에 전염병을 즉각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물론 단점은 이것이 끔찍한 새로운 감시 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가 CNN 링크가 아닌 폭스 뉴스 링크를 클릭했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내 정치적 견해 혹은 내 성격에 대해 뭔가를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비디오를 보고 있는 나의 체온, 혈압, 심박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면 무엇이 나를 웃고 울게 만들고 무엇이 나를 정말로 화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노, 기쁨, 권태와 사랑은 열과 기침 같은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정부가 우리의 생체 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에 대해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예측할 수 잇고, 우리의 감정을 조종하고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팔 수 있다. 제품이든 정치인이든 말이다. 생체 인식 모니터링은 영국 데이터 분석 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의 데이터 해킹 전술을 석기 시대의 유물로 보이게 만들 것이다. 모든 시민이 하루 24시간 생체 팔찌를 차고 다녀야 하는 2030년도의 북한을 상상해보라. 당신이 위대한 수령의 연설을 들었는데 팔찌가 당신이 숨기지 못한 분노 신호를 잡아낸다면 당신은 끝장이다."
 
우리는 경고를 받을 것이다. 예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 같은 일부 사회 평론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코로나19 팬데믹 기술 전체주의 국가 감시라는 어두운 미래를 열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2012년 쓴 저서에서 소개한, 모든 사회 문제를 기술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적 솔루셔니즘(technological solutionism)'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코로나19를 억제하기 위해 제안된 기술 '솔루션'이 필연적으로 감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접 찾아낸 정부의 팬데믹 대응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솔루셔니즘'으로부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보았다. 한쪽에선 앱을 통해 감염에 관한 올바른 정보에 적절하게 노출되는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고 믿는 '진보적 솔루셔니스트들'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선 방대한 디지털 감시 인프라를 활용해 우리의 일상 활동을 억제하고 어떤 위법 행위도 처벌하려고 하는 '징벌적 솔루셔니스트들'이 보였다. 모로조프가 우리의 정치 체제와 자유에 가장 심각하고 궁극적인 위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팬데믹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기술의 '성공' 사례 때문에 솔루셔니스트들이 가진 기술 도구들이 불평등에서부터 기후변화에 이르는 다른 모든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 옵션으로 확고히 자리 잡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해 까다로운 정치적 질문을 던지기보다 개인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솔루셔니스트의 기술을 동원하기가 훨씬 더 쉬운 법이다.
 
평생 억압적인 권위에 저항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는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필연적인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모두 균형 있게 인식해야 한다는 이 가르침이야말로 이번 장을 마무리하기에 적절한 말이다. 디스토피아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개인의 건강과 웰빙이 훨씬 더 중요한 사회적 우선순위가 될 것이기 때문에 기술 감시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집단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 기술을 개인적으로 통제하고 그것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는 것은 통치자들과 우리 각자의 몫이다.
 

【 공공 및 개인 정보 관리 】

 
인터넷과 상호연결성이 높아지면서 개인에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쟁점은 더욱 큰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여러 기기를 통해 편리함을 취하는 대가로 기꺼이 사생활을 제공하려는 경향을 점점 더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일부가 드러났고, 해방과 민주화의 도구로 전례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인터넷은 동시에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며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거대 감시 도구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듯이, 더욱 투명해진 세상에서 프라이버시란 무엇인지에 관한 세계적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프라이버시가 왜 이리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을까? 우리는 개인에게 왜 사생활이 중요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숨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도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온갖 종류의 말과 행동이 있다. 감시당하는 사람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의 행동이 더욱 순응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수많은 연구 자료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이 우리 내부적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등에 관한 여러 본질적 사안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사생활에 관련된 사안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이제 막 심리학적, 도덕적, 사회적 시사점에 대해 눈을 떴을 뿐이다. 예를 들어 개인적 차원에서 개인의 삶이 완전히 공개될 때, 크고 작은 비도덕적 행동이 모두에게 알려질 때 누가 용기 있게 나서서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맡으려고 할 것인가? 제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은 우리 개인의 일상 전반에 스며들어 삶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지만, 기술이 가져올 방대한 변화가 우리의 자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기술의 노예가 아닌 활용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이는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몫이다. 집단적인 관점에서는, 기술이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에 대해 모두가 정확히 인지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행복을 파괴하기보다는 향상시킬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 정보 윤리 】


데이터, 알고리즘, 과학, 기술, 사용 용도, 응용 프로그램은 사생활과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기회들은 중대한 윤리적 문제와도 뗄 수 없다. 여기서 세 개의 요소가 특히 눈에 띈다. 빅데이터의 남용, 선택과 결정 과정에서 과도한 알고리즘 의존, 그리고 많은 자동화 프로세스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나 관리 감독의 점진적인 감소다. 이 세 요소가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공정성, 책임감, 평등, 인권 존중 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런 윤리적 문제들은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개방적이고 다원적이며 관대한 정보 사회를 지지하는 가치와 인권을 지키면서, 동시에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하고 응용할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튼튼하고 공정하게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윤리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유감스러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한편으로 윤리적 문제를 간과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사회적인 거부에 직면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권리와 윤리적 가치를 잘못된 맥락에서 과도하게 강조하게 되면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 시 사회와 인간의 유용성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릴 수 있다. 유럽의회(The European Parliament)의 시민자유·정의·국무위원회(LIBE)가 제시한 EU 일반개인정보보호법(EU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개정안은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다. 이 개정안은 두 극단을 피하기 위해 네 개의 기준을 제시했다. 바로 기술의 가능성, 환경의 지속가능성, 사회적 수용성, 인간의 선호도다. 이 기준들은 인간의 삶과 지구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모든 디지털 프로젝트의 필수 지침이다. 이런 지침은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우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한다.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윤리 전략은 특정 기술(컴퓨터, 태블릿, 핸드폰, 인터넷 프로토콜, 온라인 플랫폼, 클라우드 컴퓨팅 등)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초점은 디지털 기술이 생산하는 데이터다. 따라서 ‘인터넷 윤리’, ‘로봇 윤리’, 또는 ‘기계 윤리’라는 단어가 핵심을 놓치는 이유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단어는 ‘컴퓨터 윤리’가 올바른 관점을 제시할 것처럼 보였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따라서 사생활, 익명성, 투명성, 신뢰, 책임과 같은 윤리적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특정 기술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의 수명 주기, 즉 데이터 수집에서부터 데이터 가공, 조작, 활용에 입각해 윤리적 문제를 봐야 한다. 사회적 거부와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의 위험 사이에서 우리를 이끌어주는 정보 윤리가 필요한 이유며, 사회와 구성원, 그리고 환경에 이익을 주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윤리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정보 윤리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등이 초래하는 도덕적 문제를 연구하고 살펴보는 분야이다. 정보 윤리의 목적은 데이터 윤리, 알고리즘 윤리, 관행의 윤리라는 세 가지 정보 윤리를 살펴보고 연구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옳은 솔루션(가령 올바른 행동이나 올바른 가치)을 도출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협소한 의미의 데이터 윤리는 데이터의 생성, 기록, 큐레이션, 처리, 보급, 공유, 사용을 의미한다.
 
데이터 윤리는 대규모 데이터의 수집, 분석, 적용에 따른 도덕적 문제를 다룬다. 이런 도덕적 문제의 범위는 의학 연구와 사회과학 연구에 있어 빅데이터의 활용과 프로파일링, 광고, 데이터 공헌(data philanthropy), 정부 주도 프로젝트의 공개 데이터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중대한 도덕적 문제에는 데이터 마이닝(data-mining), 데이터 링킹(data-linking), 데이터 머징(data-merging) 그리고 대규모 데이터의 재사용을 통한 개인정보의 재식별화가 있다. 또한 소위 ‘집단 사생활(group privacy)’에 대한 뚜렷한 위험도 존재한다. 각각의 개인정보는 비식별화(수집된 개인정보의 폐기)를 하더라도 특정 공통점을 공유하는 개인들을 구별하다 보면 심각한 윤리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집단 차별(연령 차별, 민족 차별, 성차별 등)이나 특정 집단을 겨냥한 폭력이 있다. 데이터 과학과 기술의 혜택, 기회, 위험, 도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신뢰와 투명성이 데이터 윤리의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② 알고리즘 윤리는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인공 작용제(artificial agents), 머신 러닝, 로봇에 관심을 둔다. 알고리즘 윤리는 알고리즘의 복잡성과 자율성이 증가함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를 다룬다. 알고리즘은 인공지능 루틴(AI routines)과 인터넷 봇(internet bots)과 같은 스마트 에이전트 형태로 윤리적 문제를 만든다. 알고리즘 윤리는 특히 머신 러닝 응용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 알고리즘 윤리의 중대한 도전 과제에는 예측하지 못하고 원하지도 않았던 결과와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사용자와 개발자, 그리고 데이터 과학자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가 포함된다. 그 결과 알고리즘의 윤리적 설계와 검사, 그리고 잠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예컨대 반사회적 콘텐츠의 홍보나 차별 등이 있다)에 대한 평가가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대두되고 있다.

③ 마지막으로 관행의 윤리는 책임 있는 혁신, 프로그래밍, 해킹, 전문가 행동 강령 및 의무에 대한 것이다. 관행의 윤리는 데이터 과학자를 포함해 데이터 처리와 전략,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조직의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관행 윤리의 목적은 책임 있는 혁신·개발·사용에 대한 전문가 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윤리적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윤리적 프레임워크는 데이터 사이언스와 기술의 발전을 이끌면서 개인과 집단의 권리를 보호하는 윤리적 관행을 보장한다. 이 분석의 중심에는 사용자 동의, 사용자 정보 보호 및 2차 사용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데이터 윤리, 알고리즘 윤리, 관행 윤리라는 별도의 연구 대상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들은 여러 윤리적 문제를 식별하고 해결하기 위한 세 개의 축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한 연구는 사용자 동의, 알고리즘 검사, 전문가의 책임과 같은 세부 주제 역시 다룬다.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의 윤리적 감사는 설계자와 개발자, 사용자의 책임감을 분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정보 윤리는 모든 개념적 공간을 반드시 다루어야 하며 따라서 연구의 세 축을 함께 다뤄야 한다. 문제에 따라 우선순위와 초점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문제는 하나의 축에만 걸쳐 있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데이터 윤리는 거시 윤리로서 시작부터 개발되어, 일관성 있고 전체적이며 포괄적인 다중 당사자 프레임워크 안에서, 협소하고 임기응변식의 접근 방식을 피하면서 정보 혁명이 불러온 다양한 윤리적 함의를 다뤄야 한다.
 

【 권력을 얻은(잃은) 시민 】

 
■ 넓은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화의 가장 큰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효과는 '개인 중심(me-centred)' 사회, 즉 개인화의 과정이자 새로운 형태의 소속과 공동체의 출현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공간(지역 공동체), 직장, 가족보다는 개인의 프로젝트와 가치, 이해관계가 공동체 소속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인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미디어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 집단적 구상을 점차 주도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디지털 미디어와 사회(Digital Media and Society)> 보고서에 의하면,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를 일대일, 일 대 다수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 시간과 거리를 초월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고, 새로운 이익집단을 형성하며 사회적, 물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한다. 높은 효용성과 낮은 비용, 그리고 지리적으로 중립적인 디지털 미디어의 특징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경제를 뛰어 넘는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온라인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접근은 다수에게 상당한 이익을 창출한다. 정보 제공이라는 역할을 넘어 (예를 들어, 시리아 난민들은 이동 경로를 확인하는 것 외에도 인신매매 조직을 피하기 위해 구글맵과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토론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 시민에게 권력을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악용될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2016년 세계 위험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권력을 얻은(잃은) 시민[(dis)empowered citizen]'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개인과 공동체가 기술로 인해 권력을 얻는 동시에 정부와 기업, 이익집단에게서 소외되는 현상이다. 권력을 얻은(잃은) 시민은 두 가지 트렌드, 즉 권력을 얻거나 잃는 현상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난다. 개인은 기술의 변화로 더욱 쉽게 정보를 얻고 의사소통을 하고 공동체를 꾸리며 힘을 얻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시민생활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법을 경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개인, 시민사회 그룹, 사회운동과 지역공동체는 점차 투표와 선거 등 전통적 의사결정 과정에 의미 있는 참여 기회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며, 국가와 지역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기관(제도)과 권력 집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권력이 없다고 느낀다. 가장 극단적으로는 정부가 기술의 결합을 활용해 정부와 기업의 활동에 투명성을 요구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와 개인 그룹을 진압하거나 탄압하려 할 수도 있는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실제로 정부가 시민사회 그룹의 독립성과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법과 정책을 마련하면서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기술은 건강하고 열린사회에 어긋나는 새로운 형태의 감시와 다양한 방법의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민주적 힘은 비국가 세력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다에시(Da'esh) 및 다른 소셜 미디어에 밝은 테러조직의 등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특히 극단주의 명분을 위해 선전을 유포하고 추종자를 동원하는 등 악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공동체 역시 디지털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사용의 전형적 특징인 공유의 힘은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시민사회에 리스크를 가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직관에 반대되게도, 디지털 채널을 통해 미디어가 범람하면서 개인이 활용하는 뉴스 제공의 원천이 편협해지고 양극화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MIT 임상심리학자이자 과학기술의 사회학 교수인 셰리 터클(Sherry Turkel) 박사는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이라고 칭했다. 이런 현상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읽고, 공유하고, 보는 모든 것이 정치적, 시민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심각한 위험성도 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공동체의 화합에 이득이 되는 것과 도전이 되는 것에 대한 더 많고 더 양호한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 디지털 초연결사회 】

(hyper-connected society)

 
https://youtu.be/w4T2Ktg96Mo?si=pXWP5jp7gdfa8FGn 

 ■ https://youtu.be/JObHxMr6ugU?si=ISd4BdnFrWMbKymo 


■ 제4차 산업혁명으로 실물과 디지털의 연계를 가능하게 한 주요 기술 중 하나인 '사물인터넷'은 종종 '만물 인터넷(internet of all things)'이라고도 불린다. 요약하면 상호연결된 기술과 다양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사물(제품, 서비스, 장소 등)과 인간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실생활과 가상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센서와 여러 장비들이 놀랄 만한 속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 작고 저렴하며 스마트해진 센서들은 제조 공정뿐 아니라 집, 의류, 액세서리, 도시, 운송망과 에너지 에너지 네트워크 분야에까지 내장되어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와 같이 인터넷과 연결된 기기들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향후 몇 년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매우 세밀하게 우리의 자산과 활동을 모니터하고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공급망 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부터 사회기반시설 및 보건의료까지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
 
사물 인터넷이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원격 모니터링 기술을 살펴보자. 기업은 모든 상자와 화물운반대, 컨테이너에 센서와 송신기 혹은 전자태그(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부착시켜, 공급망에 따라 이동할 때마다 위치 및 상태를 추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비자 역시 물품이나 서류의 배송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일할 수 있다. 공급망 경로가 길고 복잡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에게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빠른 시일 안에 이러한 모니터링 시스템은 사람의 이동과 추적에도 활용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기존의 개인과 기관의 참여와 협업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방식인 블록체인(blockchain)거래 기록과 승인이 이루어지기 전에 커뮤터 네트워크상에서 참여자들 공동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보안 프로토콜이다. 블록체인은 서로 모르는 (그래서 신뢰 기반이 없는 관계의) 사용자들이 제3의 관리나 중앙원장과 같은 중립적 중앙당국의 개입 없이 공동으로 만들어나가는 시스템이라 믿을 수 있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블록체인은 암호화된 보안으로 모두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특정 사용자가 시스템을 통제할 수 없고, 참여자 모두에게 검증을 받아야 하므로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원장이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블록체인 시스템은 비트코인(Bitcoin)이지만, 기술 발달로 인해 곧 수많은 유사 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은 이 기술을 활용하여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화폐를 통해 금융거래가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각종 기관을 대신해 출생 및 사망증명서, 소유권, 결혼증명서, 학위 등의 문서 발급은 물론, 보험금 청구와 의료 기록, 투표에 이르기가지 코드화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거래가 블록체인 시스템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 경제적 리셋 】

https://youtu.be/MnSo5u-UTks

https://youtu.be/TcQkhEq66As

 
코로나19 경제학 】

(The Economics of COVID-19)


■ 현대 경제는 이전 세기의 경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에 비해 무한대로 상호연결되어 있고, 얼기설기 얽혀 있어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세계 인구, 불과 몇 시간 만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장소를 연결해 줌으로써 매년 10억 명 이상이 국경을 넘나들게 해주는 비행기, 자연과 야생동물 서식지를 침해하는 인간, 수백만 명이 바짝 붙어 거주하는(종종 적절한 위생과 의료 시설이 부족한 상태로) 도처에서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고 있는 거대 도시들을 특징으로 한다. 수 세기 전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지 수십 년 전의 경제 상황과 비교해 봐도 오늘날의 경제는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일어났던 팬데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경제적 교훈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 세계적 경제 재앙은 1945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악화 속도 면에서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다. 과거 사회가 견뎌냈던 재난과 경제적 절박감에 견줄 수는 없지만,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유사하면서도 강력한 특징이 있다. 1665년, 마지막 흑사병으로 18개월 동안 런던 인구의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을 때 소설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는 1722년 발간한 〈흑사병 연대기 논문집(A Journal of the Plague Year)〉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거래는 멈췄고, 고용은 중단됐다. 가난한 사람들의 일과 빵이 끊겼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애처롭게 들렸다. 수천 명이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났고, 길거리에서 죽음이 그들을 덮쳤다. 런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알리는 전령傳令 역할뿐이었다." 디포의 책에는 부자들이 어떻게 ‘죽음과 함께’ 시골로 탈출했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흑사병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됐고, ‘돌팔이 의사와 사기꾼들’이 어떻게 엉터리 치료제를 팔았는지를 보여주는, 오늘날 상황을 연상시키는 일화들로 가득하다.
 
역사는 교역로를 통해 팬데믹이 확산되는 방법과 공중보건과 경제의 이해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충돌(뒤쪽에 나올 경제적 ‘일탈(aberration)’로 간주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역사학자 사이먼 샤마(Simon Shama)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재난이 닥쳤을 때 경제학은 항상 공중보건 분야의 이해관계와 충돌했다. 세균성 질병에 대해 이해하기 전까지 흑사병은 주로 더러운 습지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진 ‘오염된 공기’와 ‘유독한 증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제는 번영을 가져다준 상업적 동맥들이 독의 매개체로 변모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방역 조치가 제안되거나 실시되면 시장, 박람회, 거래 중단으로부터 가장 피해를 보게 되는 상인과 일부 장소에서 일하는 장인匠人과 노동자가 강하게 저항했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부활할 수 있게 경제가 일단 죽어야 할까? 15세기부터 유럽 도시 생활의 구성원이 된 공중보건 수호자들은 “그렇다”고 말했다.
 
역사는 유행병이 국가 경제와 사회 구조의 위대한 ‘리세터(resetter)’ 역할을 해줬다는 걸 보여준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통틀어 주요 팬데믹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한 주요 논문은 거시경제 여파가 최장 40년 동안 지속되면서 실질 수익률을 크게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반대 효과를 내는 전쟁과는 대조적이다. 팬데믹과 달리 전쟁은 자본을 파괴한다. 전쟁은 실질금리를 끌어올리고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는 반면에 팬데믹은 실질금리를 낮춰 경제활동을 둔화시킨다. 게다가 소비자는 새로운 예방 조치 차원에서건 아니면 단순히 팬데믹 기간 동안 잃어버린 부를 만회하기 위해서건 저축을 늘려서 충격에 대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팬데믹 이후 통상 실질임금이 오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자본의 희생으로 이득을 볼 것이다.
 
1347년부터 1351년까지 유럽을 황폐화시킨 흑사병(불과 몇 년 만에 유럽 인구의 40%를 몰살시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노동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자신들 손에 있다는 사실을 생애 처음으로 깨달았다. 흑사병이 잠잠해진 뒤 불과 1년 만에 프랑스 북부 소도시 생토메르에서 일하는 섬유 노동자들은 잇따라 임금 인상을 요구해서 쟁취해냈다. 2년 뒤 많은 노동자 길드(guild)는 협상을 통해 때로는 흑사병 이전 수준보다 많게는 3분의 1 정도까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임금은 올렸다. 이와 유사하지만 덜 극단적인 다른 팬데믹의 사례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즉, 자본의 손상에 따라 노동자는 이득을 봤다.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 심화로 악화될 수 있지만(아프리카와 인도는 주목할 만한 예외다), 그러한 시나리오는 우리가 살펴볼 자동화의 확대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될 위험이 있다. 이전의 팬데믹들과는 달리 코로나19 위기가 노동에 유리하고 자본에 불리한 쪽으로 균형을 맞춰줄지는 불확실하다.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인해 기술은 조합을 변화시킨다.
 

【 불확실성 】


■ 코로나19를 둘러싸고 지속되는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공포를 유발하는 모든 새로운 위험이 그렇듯이 코로나19는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한다. 글로벌 과학계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과학자인 중국 의학과학원 병원생물학연구소 진치金奇 소장이 2020년 4월 “코로나19가 장기간 인류와 공존하다 계절성 질환처럼 변해 인체 내에서 살아가는 유행성 전염병처럼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던 말이 옳았다는 공감대가 압도적으로 형성됐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매일 많은 자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약 반 년이 지난 2020년 6월 현재도 우리 지식은 여전히 아주 부족해서 아직도 코로나19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지 못한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주제로 발표된 과학 논문이 많이 나왔지만, 치명률, 즉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 중 숨지는 환자의 비율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치명률이 약 0.4~0.5%에서 최대 1%까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확진자 중 무증상자 비율, 무증상자의 전염률, 계절 효과, 잠복기, 국가 감염률 등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진전이 있지만, 다른 많은 요소들은 여전히 상당히 ‘알려진 무지’의 상태다. 정책 입안자와 공무원들은 이처럼 만연한 불확실성 때문에 적절한 공중보건 전략과 그에 상응하는 경제 전략을 고안하기가 매우 어렵다.
 
놀랄 일은 아니다. 앤 리무인(Anne Rimoin) UCLA 전염병학 교수는 “코로나19는 인류에게는 낯선 새로운 바이러스이며, 향후 닥칠 일을 누구도 모른다”라고 인정했다. 이런 환경에선 상당히 겸손한 자세가 요구된다. 세계적 바이러스학자인 피터 피오트(Peter Piot)의 말대로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의료계를 당혹하게 만드는 변화무쌍한 증세들로 자신을 드러내는 변장의 달인이다. 코로나19는 호흡기 질환이지만, 상당수 환자들에게선 심장염과 소화기 질환에서부터 신장염, 혈액 응고, 뇌막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세가 나타난다. 게다가 회복 하더라도 다수는 만성 신장과 심장 질환뿐만 아니라 신경학적 후유증에 계속해서 시달린다. 불확실성 앞에서 향후 닥칠 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짜보는 것도 합리적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과 임의적 상황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결과들이 초래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장을 위해 여러 생명을 희생시키는 경제적 오류 】

■ 코로나19 팬데믹 내내 ‘생명과 경제 중 무엇을 살려야 하냐’의 문제, 즉 생명이 중요하냐 생계가 중요하냐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펼쳐졌다. 이것은 잘못된 ‘트레이드오프(trade-off : 하나를 얻으려고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공중보건과 경제성장의 타격 중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신화는 쉽게 논박할 수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부 생명을 희생하느냐가 다윈적(Darwinian) 사회적 명제냐 아니냐 하는 중요한 윤리적 문제를 제쳐두고, 생명을 구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은 경제 복지를 향상시키지 못할 것이다.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① 공급 측면에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 대로 여러 가지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규제를 섣불리 완화함으로써 감염이 가속화될 경우, 감염되는 종업원과 노동자들이 늘어나 경영을 중단하는 기업 역시 늘어날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창궐 이후 이런 주장이 옳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증명되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노동자가 너무 많아 가동을 중단해야 했던 공장(육류 가공 시설 등 노동자들끼리 물리적으로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작업 환경의 경우)부터 감염된 선원이 많아 정상 운항을 할 수 없어 운항을 중단한 해군 함정까지 사례는 다양했다. 노동력 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이 감염될 것을 우려해 일터로 복귀하길 거부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기업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크다고 느낀 직원들은 작업 정지 등 일련의 행동에 나섰다.

② 수요 측면에서의 논쟁은 언제나 경제활동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결정 요인인 ‘심리’로 귀결된다. 소비자 심리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이상 심리가 회복되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종류의 ‘정상화’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안전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 소비자와 기업의 결정을 유도한다. 즉, 경제의 지속적인 개선 가능 여부는 코로나19를 극복했다는 확신(그렇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소비하고 투자 하지 않을 것이다)과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퇴치됐다는 증거(그런 증거가 없다면 사람들은 우선은 주변 지역이 안전하고, 이후에는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두 가지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한 논리적인 결론은, 정부는 경제가 지속 가능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건강과 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고, 비용이 얼마가 되든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경제학자이자 공중보건 전문가는 “생명을 살려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정책만이 경제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가 생명을 살리지 못하면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쇼핑, 여행, 외식을 재개하지 않게 되고 봉쇄 여부와 상관없이 경기 회복에 지장을 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래의 데이터와 그에 따른 분석만이 건강과 경제 사이에 트레이드오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 몇몇 주의 봉쇄 조치 해제 초기 단계에서 수집된 일부 데이터를 보면 봉쇄 이전부터 이미 지출과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시작되자 정부가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사실상 경제를 ‘셧다운(shutdown)’하기 시작했다. 미국 몇몇 주들이 일부 경제활동 재개를 결정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즉, 소비는 여전히 위축된 상태였다. 이는 경제생활이 정부 지시에 의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대부분의 의사결정자들이 경제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 겪었던 어려움이 뭔지를 잘 보여준다.

봉쇄의 경제적·사회적 피해는 누구에게나 확연히 드러나지만, 성공적인 개방의 전제 조건인 코로나19 억제와 사망 방지 측면에서의 성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나 사망자가 생기지 않아도 국민적 축하를 받지 못하므로 ‘잘해봤자 본전’이다. 너무 일찍 봉쇄나 개방 정책을 취하지 않고 미루고 싶은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것이 공중보건 정책의 역설이다. 그러나 이후 나온 몇몇 연구들은 그러한 유혹이 얼마나 큰 위험을 수반하는지 보여주었다. 각기 다른 방법을 써서 했으나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두 연구는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모델링해 보았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2020년 3월 가해진 광범위한 엄격한 봉쇄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포함한 유럽 11개 국가에서 310만 명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UC버클리가 실시한 또 다른 연구는 각 국가가 취한 적극적인 방역 조치 덕에 한국, 미국, 중국,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 6개 국가에서 총 6,200만 명이 감염을 피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지 않아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넘어가는 경우를 포함하면 약 5억 3,000만 명이 방역 조치의 효과를 본 것으로 파악했다. 간단한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최고조에 달했을 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 수가 이틀마다 약 두 배씩 늘어나던 국가들에서 정부는 엄격한 봉쇄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는 합리적인 대안이 없었다.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팬데믹 확진자의 폭발적인 증가와 그로 인한 엄청난 피해를 무시하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빠른 코로나19의 전파 속도 때문에 개입 시기와 강제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
 

【 사회적 리셋(Social Reset)의 의의 】


■ 역사적으로 팬데믹은 사회를 철저하게 테스트해왔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격변은 수 년 동안, 그리고 아마 수 세대에 걸쳐 이어질 것이다. 가장 즉각적이면서 가시적인 영향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부적절했다거나 준비가 안 됐던 것처럼 보였던 정책 입안자와 정치인을 향한 공분과 비난이 커질 거라는 점이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 전 미국 국무장관은 "국가는 각 기관들이 재앙을 예견하고, 영향을 차단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뢰를 얻어야 응집하고 번창한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많은 국가 기관들은 실패했다고 간주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연구, 과학, 혁신 면에서 강력한 자산과 정교한 의료 시스템을 갖춘 일부 부유한 나라들에서 특히 더 강할 것이다.
 
시민들은 정부 당국이 다른 나라 정부들과 비교했을 때 왜 그렇게 코로나19 사태 대응이 서툴렀는지 따져 물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구조와 사회, 경제 체제의 본질이 대다수 시민이 사회, 경제 복지를 보장하지 못한 '진범'으로 드러나 비난받을 수 있다. 더 가난한 나라들에서 코로나19가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극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예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왔던 사회적 문제들, 특히 빈곤, 불평등, 부패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사회적 붕괴(사회 전체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개인 집단 간 상호작용의 붕괴를 모두 지칭한다)만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대처 면에서 효과 유무와 관련하여 배워야 할 시스템 상의 교훈이 있는가? 각국의 대응이 어느 정도까지 특정한 사회나 지배 체제에 대한 본질적 장단점을 드러내주는가? 무엇보다 한국, 싱가포르, 덴마크와 같은 몇몇 나라들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보다 잘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준비, 위기관리, 홍보 활동, 확진자와 사망자 수, 그리고 다양한 다른 기준을 따져봤을 때 여러 면에서 부진한 성과를 나타낸 것 같다. 프랑스와 독일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고 코로나19 확진자 수도 대략 비슷하지만 사망자 수는 현저히 달랐다. 이러한 명백한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게 의료 인프라의 차이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2020년 6월 현재 코로나19가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특히 심각하게 확산된 반면 다른 국가나 지역에선 그렇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점이 많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번 사태에 더 잘 대응한 국가의 경우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특징을 공유한다. ①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닥쳐올 일에 '대비'했다.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비용 대비 효율적이고 포용적인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사회 구성원들이 국가 지도자들과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높이 신뢰한다. 개인적 열망과 욕구보다 공익을 중시하며, 진정한 연대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 같다. 좀 더 기술적(기술성 안에는 문화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지만)인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성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특성은 '호의적인' 사회적 특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 특성은 또 포용, 연대, 신뢰라는 핵심적 가치가 강력하고도 결정적인 요소이면서 코로나19 억제 성공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걸 증명해준다.
 
물론 국가별로 사회적 리셋이 어떤 형태를 띨지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묘사하기는 시기상조지만 그것이 전 세계에 미칠 광범위한 영향의 윤곽 중 일부는 지금도 묘사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부자에게서 빈자로, 그리고 자본에서 노동으로 거대한 부의 재분배가 시작될 것이다. 둘째로 코로나19는 연대보다는 경쟁을, 정부의 개입보다는 창조적 파괴를, 사회복지보다 경제성장을 각각 지지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해 동안 많은 논객, 재계 지도자, 정책 입안자들이 신자유주의 '맹목적 시장숭배주의(market fetishism')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여오면서 그 원칙이 약화되어 왔는데 여기에 코로나19가 치명타를 가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열렬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해왔던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코로나19 팬데믹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대규모 재분배와 신자유주의 정책 포기라는 두 가지 병존하는 힘은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 불안을 부추길 수 있는지부터 정부 역할의 확대와 사회계약의 재정립에 이르기까지 사회 조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사회 불안(Social Unrest) 】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험 중 하나가 사회 불안이다. 일부 극단적인 경우 그것이 사회적 붕괴와 정치적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많은 연구와 기사에서는 사람들이 직업도, 소득도,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감도 없을 때 종종 폭력에 의존하게 된다는 명백한 관찰 결과에 근거하여 이러한 위험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음 인용문이 문제의 본질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인용문 내용은 미국에 해당하지만 결론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도 유효하다.

"희망도, 일자리도, 자산도 없는 사람들은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쉽게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미 미국인 약 30%는 무일푼이거나 빚만 지고 있다.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더라도 돈도 일자리도 없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이 사람들이 절박해하고 분노한다면, 최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죄수 탈옥이나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가 덮친 직후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약탈 같은 장면들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 정부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예비군이나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면 사회는 붕괴되기 시작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집어삼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회 불안은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위험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코로나19에 의해 사회 불안은 한층 증폭되었다. 지난 2년 동안 프랑스에서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2018년 11월 프랑스에서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면서 시작돼 점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시위로 시위 참가자들이 '노란색 야광 조끼'를 입었다)부터 볼리비아, 이란, 수단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반독재 시위에 이르기까지 부국과 빈국 등 전세계 곳곳에서 100건 이상의 중대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반독재 시위 대부분은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독재 정부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를 강제로 시행했을 때 다수의 시위대는 전 세계 경제처럼 동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집단 모임과 가두시위 금지령이 해제되면 과거의 불만과 일시적으로 억눌렸던 사회적 불안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재분출될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일자리를 잃고, 걱정하고, 비참하고, 분개하고, 병들고, 굶주린 사람이 극적으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비극이 누적되면서 실업자, 가난한 사람, 이민자, 죄수, 노숙자,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 여러 사회 집단 속에서 분노와 억울함과 격분이 커질 것이다. 이런 에너지가 어떻게 폭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회 현상은 종종 팬데믹과 동일한 특성을 나타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 현상이나 팬데믹 모두 갑자기 큰 변화가 생기는 시점이나 계기가 있다. 빈곤, 박탈감, 무력감 등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파괴적인 사회적 행동이 최후의 선택 수단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코로나19 위기 초기에 저명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이러한 우려를 지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사회 불안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스웨덴의 산업가인 야코프 발렌베리(Jacob Wallenberg)도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2020년 3월 다음과 같이 썼다. "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면 실업률은 20~30%에 이르고, 경제는 20~30%까지 역성장할 수 있다. (중략) 회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 불안이 고조되고, 폭력 사태가 발발하고, 사회경제적 파장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실직자가 급증하고 시민들은 심각하게 고통받는다. 죽는 사람도 생기고, 사는 게 끔찍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생긴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실업률이 20~30%를 넘고, 2020년 2분기에 대부분의 경제가 이전에 걱정스럽게 여겨졌던 수준을 뛰어넘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우리는 이제 발렌베리가 '걱정스럽다'고 생각했던 기준을 넘어섰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사회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어디일까? 사회는 어느 정도로 불안해질까?
 
코로나19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회 불안의 물결을 일으켰다. 미국에선 2020년 5월 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비무장 상태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사망한 사건 이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시위가 시작됐고, 사회 불안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때 코로나19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플로이드의 사망은 사회 불안에 불을 지핀 불꽃이었지만, 코로나19가 더 확실히 드러내준 인종 불평등과 실업률 상승 등의 문제는 시위를 증폭시키고 유지해주는 연료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난 6년 동안, 100명 가까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경찰서에서 구류된 채 숨졌지만 전 국가적인 봉기를 촉발한 건 플로이드의 죽음이었다. 따라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 흑인 사회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친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이러한 분노가 폭발한 게 우연이 아니다. 2020년 6월 말 현재, 미국 흑인들의 코로나19 치명률은 미국 백인에 비해 2.4배나 높다. 이와 동시에 미국 흑인들의 일자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급감하고 있다.
 
놀랄 일도 아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백인 미국인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워낙 심하다 보니 거의 모든 면에서 흑인 노동자들은 백인 노동자들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다. 2020년 5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업률은 16.8%(전국 실업률은 13.3%)로, 사회학자들이 '전기적 가용성(biographical availability)'이라고 부른 현상에 부합할 정도로 아주 높은 수준이다. 전기적 가용성이란 정규직의 축소가 사회운동 참여도를 높이는 경향을 말한다. 우리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이 어떻게 진화할지, 그리고 만약 이 운동이 계속된다면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인종 문제보다 더 광범위한 문제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짐들이 있다. 제도적 인종차별에 맞서는 시위는 좀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경제적 정의와 포용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앞에서 설명한 불평등 문제에 대해 이런 요구가 이어진 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이는 위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서로를 증폭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떤 상황도 돌이킬 수 없는 건 아니며, 당기기만 하면 무조건 사회 불안이 야기되는 '기계 방아쇠' 같은 건 없다. 사회 불안은 다수의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집단적인 인간의 행동 역학과 마음가짐의 표현이다. 상호연결성과 복잡성이란 개념에 걸맞게 사회 불안의 폭발은 광범위한 정치, 경제, 사회, 기술,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 본래 비선형적인 사건이다. 그런 요인들은 경제적 충격, 안천후로 인한 고통, 인종적 긴장, 식량 부족, 그리고 심지어 불공평하다는 느낌까지 다양하다. 여러 요인들은 거의 항상 상호작용을 하면서 연쇄적 파급 효과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특정한 혼란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는 있다. 어느 나라가 사회 불안에 가장 취약할까? 언뜻 보면, 사회안전망이 없는 빈곤국과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부국이 가장 취약할 것 같다. 소득 감소의 충격을 낮출 수 있는 실업급여 같은 정책 수단이 없거나 부족해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처럼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는 남유럽처럼 연대 의식이 강하거나 북유럽처럼 소외 계층을 도울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갖춘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가끔은 두 가지를 모두 가진 나라도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들은 강력한 사회안정망과 연대 의식(특히 세대 간)을 모두 가지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나칠 정도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퍼져 있는 유교는 개인의 권리보다 의무감과 세대 간의 연대를 우선시한다. 그것은 또 공동체 모두에 이익이 되는 조치와 규칙에 높은 가치를 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에선 사회 불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노란 조끼 시위를 통해 증명됐듯이,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어도 사회적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는 국가라면 폭력적인 사회 불안이 지속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 사회 불안은 경제와 사회복지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다른 조직들이 올바른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위험을 완화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잠재적인 사회 불안에 직면하더라도 무기력하지는 않다고 강조하고 싶다. 사회 불안을 유발하는 가장 큰 근본 원인은 '불평등'이다.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불평등과 싸우기 위한 정책 도구는 확실히 존재하며, 정부가 그 도구를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 '큰' 정부의 귀환 】

(The Return of "Big" Government )

■ 지난 5세기 동안 미국과 유럽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심각한 위기가 국력을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항상 그래왔고, 이번 코로나19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역사학자들은 18세기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이 재정 여력을 키운 이유가 항상 전쟁, 특히 먼 나라에서 일어나서 해양 활동 능력을 요구하는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모든 강대국들이 참여함으로써 최초의 진정한 세계 전쟁으로 묘사된, 1756~1763년에 일어났던 '7년 전쟁(중부 유럽 지역인 슐레지엔 영토를 둘러싸고 유럽 대국들이 둘로 갈라져 싸운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주요 위기에 대한 대응은 항상 '모든 독립 정부의 당연한 권리에 속하는 주권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속성'인 과세부터 시작해서 국가의 힘을 더욱 공고히 해줬다. 그렇다는 걸 잘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은 과거처럼 이번에도 세수稅收가 증가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해준다. 과거처럼 '나라가 전쟁 중이기 때문(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적에 맞선다는 식의)'이란 논리가 세수 확대의 사회적 근거와 정치적 정당성으로 제시될 것이다.
 
1914년 프랑스 최고 소득세율은 제로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 뒤에는 50%로 올라갔다. 캐나다는 1917년 전쟁 재원 마련을 위한 '임시' 방편으로 소득세를 도입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법인이 아닌 개인이 납부하는 모득 소득세에 20%의 가산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고, 69%라는 높은 한계 세율(초과 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비율)을 도입하며 소득세를 대폭 확대했다. 전쟁 이후 세율이 내려갔지만, 전쟁 이전보다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소득세는 개인의 재산과 수입에 따라 부과되는 '등급별 과세(class tax)' 방식을 버리고 누구나 내야 하는 이른바 '대중세(mass tax)'로 바뀌었고, 이로 인해 1940년 700만 명이었던 납세자 수는 1945년 4,200만 명으로 급증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누진세율이 도입됐던 건 1944년과 1945년으로, 이때는 20만 달러 이상의 소득세 94%의 세율이 적용되었다(2019년 화폐로 따지면 240만 달러에 상당한다).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 종종 '몰수'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던 이 최고 세율은 이후 20년 동안 8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많은 다른 나라들은 이와 유사하거나 종종 더 극단적인 과세 조치를 시행했다. 전쟁 중 영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무려 99.25%나 될 정도로 높았다!
 
가끔 국가는 과세 주권을 통해 복지 제도 구축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 가시적인 사회적 이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의 이런 대규모 전환은 항상 폭력적인 외부 충격이나 다가올 미래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란 관점에서 정의되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cradle-to-grave)' 누리는 국가 복지제도 도입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때도 그랬다. 자본주의 국가 정부들이 내부 공산주의의 반란을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모델을 세웠다. 관료들이 운송에서 에너지에 이르는 경제의 상당 부분을 관리하던 이 시스템은 1970년대까지 잘 유지됐다.
 
오늘날의 상황은 당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사이 수십 년간 서양 세계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지금은 코로나19가 가한 것과 같은 대규모 '외생적인 충격'이 순전히 시장 기반의 솔루션만으로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변화를 맞게 된 상황이다. 이미 거의 하룻밤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는 민간과 공공 역역 사이의 복잡하고 섬세한 균형을 후자에 유리하게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건강과 교육 등의 책임을 개인과 시장에 떠넘기는 게 사회의 이익에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 결과 사회보험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주 끔찍하게 간주될 수 있었던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반면에 규제 없이 제멋대로 가는 경제는 사회복지를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제 일반적 생각이 될지도 모른다. 실로 놀랍고도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시장 사이의 연속성을 측정하는 눈금판이 있다면 바늘이 정부 쪽으로 크게 움직인 셈이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전 영국 총리가 "사회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개인적인 남녀가 있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 시대정신을 드러낸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왔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도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도록 이끌 것이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주카토(Mariana Mazzucato)가 제안한 대로 단순히 시장이 실패했을 때 그것을 고치기보다는 "정부는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정부 기금이 투입된 기업과의 제휴가 영리가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확대된 역할이 어떤 식으로 드러날 것인가? 더 '큰'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대폭 확대됐고, 사실상 정부가 즉각적으로 경제에 대한 통제를 하러 수 있게 됨으로써 정부 역할의 확대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매우 신속하고 전례 없는 규모로 공적 경제 개입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 4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 정부들은 극빈자들의 기본 욕구를 지원하고, 가능하면 일자리를 보존하고, 기업의 생존을 돕기 위해 마치 8~9개의 마셜 플랜(Marshall Plan :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이 서유럽 16개 나라에 행한 대외 원조 계획)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듯 수조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필요한 모든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고, 정부는 사회복지 혜택을 확대하고, 현금을 직접 지원하고, 임금을 보전해주고, 대출과 모기지 상환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에 착수했다. 오직 정부만이 경제적 재앙와 완전한 사회적 붕괴가 만연하는 거러 막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릴 힘과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향후 정부들은 각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일부 게임의 규칙을 다시 써서 자신의 역할을 영구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사회에 가장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1930년대 미국에서 대규모 실업과 경제 불안이 정부의 역할 확대로 점진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정부는 당분간 당시와 유사한 행동 경로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어떤 경로를 밟을지 가장 핵심적인 몇 가지 경로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건강과 실업보험은 처음부터 새로 만들거나 아니면 기존 보험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안전망도 가장 '시장 중심적'인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실업수당 연장과 병가 및 다른 많은 사회적 조치들이 시행되어야 하고, 이후 이들은 표준이 될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재개된 노동 조합의 관여는 이런 과정을 촉진할 것이다. 주주 가치는 부차적인 고려 사항이 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 기업이 주주에 대한 배려보다는 채권단, 고객, 사회, 직원 등 관련된 모든 종사자와 더불어 존재하고 번영하는 것을 경영 목표로 하는 자본주주의 한 형태)가 우선시되리라고 본다.
 
과거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세계의 금융화(financialization)는 아마도 역행할 것이다. 특히 금융화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미국과 영국 정부는 금융에 대한 집착을 통해 보여준 많은 특성들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자사주 매입을 불법화하는 것에서부터 은행이 대출을 장려하지 못하게 막는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특히 공적자금을 받은 모든 민간 기업(이들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에 대한 공공의 감시가 강화될 것이다. 국유화에 나서는 나라도 있는 반면에 지분 취득이나 대출 지원을 선호하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안전이나 특정 상품에 대한 국내 조달 같은 많은 다른 문제들과 관련해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기업들은 사회적, 환경적 파괴에 대해 해명하고, 그것의 해결에 나서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정부는 민간 기업이 글로벌 위험 완화에 더 많이 관여하도록 민관 협력 관계를 강하게 장려할 것이다.
 
어쨌든 국가의 역할은 확대되고, 그럼으로써 기업의 사업 수행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도는 다르더라도 모든 산업의 기업 임원들과 모든 국가들은 더 확대된 정부 개입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보건과 기후변화 해법 등 세계적 공공재에 대한 연구 개발이 활발히 추진될 것이다. 특히 정부가 국가 경제의 회복력을 강화해야 하고, 그것에 더 많이 투자하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특권층에 대한 과세도 강화될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이자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컬럼비아대학교 교수가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대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공 부문, 특히 복잡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미래 번영을 좌우할 과학과 고등교육 발전을 후원하기 위해 고안된 공공 부문에 추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연구원과 교사 및 그들을 지원하는 기관 운영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처럼 생산적인 일자리가 빠르게 창출될 수 있는 분야들에 말이다. 우리는 이번 위기에서 벗어나더라도 분명 다른 위기가 도래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이전 위기와 달라 보일 것이라는 점만 알 뿐 어떤 형태일지는 예측할 수 없다. 위기가 일어나고 있는 곳의 국가나 문화 특성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 형태를 띨 수 있는 정부의 이러한 개입은 사회계약을 재정립할 때 가장 활기차게 나타난다.
 

【 사회계약 】
(The Social Contract)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많은 사회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사회계약 조건을 재고하고 재정립하고자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저 질환을 더 악화시키듯이,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 깊은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된 해묵은 문제들은 전면으로 드러나게 만들었음을 살펴봤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사회계약을 수정하라는 소란스러운 요구를 야기하고 있다. '사회계약'은 광범위하게 정의했을 때 개인과 제도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종종 암묵적인) 합의와 기대의 집합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계약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라서 사회계약이 없으면 사회 구조가 무너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계약은 개개인이 자신의 삶과 경제적 성과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도록 강요함으로서, 많은 사람들(특히 저소득층에서)이 사회계약은 완전히 붕괴되는 게 아니라면 조금 약화되고 있을 뿐이란 결론을 내리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서서히 진화해왔다.
 
낮거나 전혀 없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환상은 이러한 사회계약의 약화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이고 예시적인 사례다. 여러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대다수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인 주거, 의료, 교육을 제외하고 많은 상품과 서비스의 인플레이션율은 하락했다. 반면 이 세가지 물가는 모두 급등함으로써 어느 때보다 많이 가처분소득, 즉 개인소득 중 소비,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치료를 받기 위해 빚을 지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많은 나라에서 일할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취업률이 올라가자 종종 소득은 정체되고 일자리는 양극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을 영위하기에 수입이 충분하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부유한 국가의 중산층도 포함해서)의 경제와 사회복지가 약화되었다.
 
오늘날 사회계약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근본적인 이유들로 불평등, 불공정, 재분배 정책의 비효율성, 배척되거나 소외되었다는 느낌의 만연 등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사회계약 파기를 주장하면서 제도와 지도자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 상실을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퍼진 분노가 평화적이거나 폭력적인 시위 형태로 분출된 나라도 있었고,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적 성향의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게 해준 나라도 있었다. 거의 모든 경우 어떤 형태로건 지배층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반란에 대비하지 못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정책 개입이 부족했다. 복잡하긴 해도 정책적 해결책은 존재하며, 그 핵심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더 공정한 사회계약에 대한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지금 세계에 적합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몇며 국제기구와 싱크탱크들은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면서 실현 방법에 대한 제안들의 윤곽을 잡았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는 전환점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제 문제는 고착화되었고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계약은 어떤 형태를 띨까? 각각의 잠재적인 계약은 적용되는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놓은 모델 같은 건 없다. 불가피하지만 당연하게도 중국에서 좋은 사회계약은 미국의 좋은 사회계약과 다르며, 미국의 좋은 사회계약은 스웨덴이나 나이지리아의 좋은 사회계약과 유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형태의 계약들은 모두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과 원칙을 공유할 수 있는데, 이 공통적 특징과 원칙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여파에 따라 더 두드러졌음이 명백하다. 두 가지 필요성이 특히 눈에 띈다. ① 보편적이지는 않더라도 더 광범위한 사회 지원, 사회보험, 의료 및 기본 품질 서비스 제공의 필요성. 노동자와 현재 가장 취약한 계층(예를 들어, 정규직 노동자가 독립 게약자와 프리랜서로 대체되는 일명 '긱 경제(gig economy)' 방식에 따라 일하며 긱 경제를 살리는 계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필요성.
 
흔히 재난에 대한 나라별 대응 방식을 보면 그 나라의 강점과 약점뿐만 아니라 사회계약의 '질'과 '견고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철저하게 평가하기 시작할 때 궁극적으로 사회계약 조건의 재정립으로 이어질 '자기 분석'에도 착수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저급하게 대응한 것으로 인식되는 국가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왜 우리나라에선 팬데믹 와중에 마스크와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을까?", "왜 정부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을까?", "근시안적 정책에 집착했기 때문일까?", "GDP가 상당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왜 그렇게 비효율적인가?", "의사가 되기 위해 10년 이상 수련을 하고 연말 성과를 사람의 생명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어떻게 트레이더나 헤지펀드 매니저보다 적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등의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환자와 의료진의 생명 유지를 위한 비용 측면에서 대부분의 국가 보건 시스템이 부적절한 상태임을 드러냈다. 세금 인상에 대한 정치적 우려로 세금이 투입되는 보건 서비스가 재원 부족(영국의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Service이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으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온 여러 부유한 나라에서는 지출 확대와 그에 따른 세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며, '효율적 경영'으로는 투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또한 각 나라의 복지제도 사이 상당한 격차가 있음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언뜻 보기에 가장 포용적인 방식으로 대응한 나라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정교한 복지제도를 가진 나라들이었다. 예를 들면, 2020년 3월에 이미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이전 3년간의 세금 신고액을 기준으로 자영업자 평균 소득의 80%와 75%를 각각 보장해줬다. 반면 가장 시장 지향적인 경제는 이들처럼 하려고 애썼지만,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부문, 특히 전통적인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고용주의 필요에 따라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회성 일을 맡는 긱 워커(gig worker), 독립 계약자 및 임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우유부단했다.
 
새로운 사회계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주제는 병가다. 경제학자들은 유급 병가를 낼 수 없는 것이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는 데 공감하는 편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유급 병가를 내지 못한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도 자의건 타의건 간에 직장에 나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과 서비스업 종사자(보통 저소득층이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한다)가 특히 더 그럴 확률이 높다. 2009~2010년 신종플루H1N1 대유행 당시 미국공중보건협회(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는 신종플루에 걸린 고용자들이 어쩔 수 없이 출근하는 바람에 700만 명이 감염됐고, 1,500명이 추가로 숨졌다고 추정했다. 부유한 국가들 가운데 미국만이 유급 병가를 고용주 재량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전체 미국 노동자의 4분의 1에 이르는 4,000만 명이 유급 병가를 내지 못했다. 이들은 주로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용주들에게 2주 병가와 가족 휴가를 일부 유급으로 내게 하는 새로운 법안에 서명했다. 단, 이는 육아 문제가 있는 노동자에게만 한시적으로 적용됐다. 이것이 미국 사회계약의 재정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반면에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은 노동자들이 다양한 기간 동안 유급 병가를 낼 수 있도록 고용주에게 요구하고 있다. 단, 이때 고용주가 노동자를 해고하면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공표된 새로운 법들에 따라 국가는 긱 경제하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프리랜서들을 포함해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급여 일부 내지는 전부를 보존해주었다. 일본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매년 최대 20일까지 유급휴가를 쓸 수 있고, 중국에서는 노동자와 고용주 간에 계약적으로 합의하거나 정해놓은 병가 기간 범위 안에서 노동자가 일당을 최소 60%에서 최대 100%까지 받을 권리를 누린다. 앞으로 우리는 사회계약의 재정립 시에 이런 문제들이 점점 더 자주 개입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서양 민주주의에서 사회계약의 중요한 또 다른 측면은 '적극적 자유(freedom)''구속받지 않을 자유(liberty)'와 관련된다. 현재와 미래의 팬데믹에 맞선 싸움이 영구적 감시 사회를 태동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서는 국가 비상사태는 공적이고 보편적이며 존재론적 위협이 닥쳤을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만 하고 넘어가겠다. 게다가 정치 이론가들은 종종 특별한 권력은 국민의 인가를 필요로 하고, 시간과 정도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이 주장의 앞부분(공적, 보편적, 존재론적 위협)에는 동의할 수 있다고 해도 뒷부분은 어떨까. 그것이 사회계약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향후 논의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사회계약 조건의 총체적 재정의는 현재의 실질적인 도전을 미래의 희망과 연결시키는 획기적인 과제다. 헨리 키신저는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지도자들은 미래를 건설하면서 위기를 관리하는 도전에 맞서왔다. 실패했다간 세상에 불이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미래의 사회계약이 그릴 등고선을 고민하면서도 그 계약에 따라 살아야 할 젊은 세대의 의견은 무시해버린다. 그들이 그 계약을 따를 것인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상 그들이 원하는 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말에 경청하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보다 더 급진적으로 우리의 사회계약을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런 경청이 더욱 중요하다. 코로나19는 그들의 삶을 뒤집어놓았고, 심각한 불황 속에서 수백만 명이 경제활동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전 세계 모든 세대는 경제적, 그리고 종종 사회적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그들은 그로 인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많은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로 인해 빚을 진 상태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도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적어도 서구권에서는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가 소득, 자산, 재산 면에서 부모 세대보다 형편이 더 나쁘다. 그들은 부모보다 집을 소유하거나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적다. 이제 또 다른 세대인 Z세대 역시 그 실패한 시스템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사회구조가 갖고 있는 악화되고 해묵은 문제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뉴욕 타임스>가 인용한 한 대학생의 말대로 "앞에 놓인 끊어진 길을 본 젊은이들은 급진적인 변화에 대해 깊은 열망을 느낀다."
 
Z세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기후변화든 사회적 불평등이든 간에 다음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에서 급진적인 해결책과 종종 과격한 행동을 제안할 것이다. 그들은 현재 시스템이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생각에 빠져 좌절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현 경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행동주의(youth activism)'가 유행하고 있고, 이런 행동주의는 과거에는 불가능했을 정도의 '동원(mobilization)'을 조장하는 소셜 미디어에 힘입어 대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동원은 비제도적 정치 참여에서부터 시위와 항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경제 개혁, 성 평등 그리고 성 소수자(LGBTQ) 권리 같은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사회 변화의 선봉에 확고히 서 있다. 그들이 변화의 기폭제가 되고 위대한 리셋을 이끄는 결정적 가속도의 원천이 될 것이라는 데는 사실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재정과 통화 정책 】

(Fiscal and Monetary Policies)
 
■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재정과 통화 분야의 정책적 대응은 대규모로 단호하고 신속하게 추진됐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은 코로나19 발발 직후 정부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한 발권력 동원을 약속하고 대규모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한편,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미국 연준은 국채와 MBS 매입에 나섰고, 유럽중앙은행(ECB)은 팬데믹긴 급매입프로그램(PEPP)을 통해 유로존 국채 매입을 약속함으로써 경제 상황이 양호한 유로존 회원국들과 취약한 회원국들 간의 차입 비용이 확대되지 않게 막는 데 성공했다. 이와 동시에 대부분의 정부들은 야심차고 전례 없는 재정 정책적 대응에 착수했다. 위기 초기부터 세 가지 목표로 긴급하고 포괄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첫째는 진단 키트 생산, 병원 치료 역량 강화, 치료제와 백신 연구 등을 통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코로나19를 통제하기 위해 최대한의 지출을 통해 싸워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파산과 재난의 위기에 처한 가정과 기업에 긴급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경제가 가능한 한 잠재 성장에 최대한 근접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총수요를 떠받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엄청난 재정 적자로 이어지면서 부유한 국가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을 크게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수준에서 2020년 정부 지출에 따른 총 부양 규모는 세계 GDP의 2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단, 이 비율은 독일이 33%, 미국이 12% 등 국가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 이런 재정 여력 확충의 영향은 해당 국가가 선진국이냐 신흥국이냐 여부에 따라 크게 다르다. 고소득 국가들의 경우 부채 수준이 올라도 감당할 수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해 적절한 수준의 복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 재정 여력이 더 양호하다. 중앙은행이 저금리 유지를 위해 무제한 국채 매입을 약속했고, 불확실성이 계속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고 높은 수준의 예비적 저축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어 당분간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상황은 고소득 국가들과 극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재정 여력이 없고 이미 심각한 자본 유출과 상품 가격 하락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펼쳤다간 환율이 타격을 입을 건 자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원금과 부채 경감 형태의 지원과 혹시 모를 전면적인 국가 부도 선언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이것은 전례 없는 상황에 맞선 전례 없는 프로그램이다. 워낙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보니 경제학자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는 ‘창의적인 온갖 재정 및 통화 정책을 대규모로 동원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불렀다. 각국 정부들이 경기 침체가 재앙적인 불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조치들이 전 세계적 표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량 해고와 기업 부도가 급증하는 것을 예방하거나 저지하기 위해 정부가 ‘최종 지급자(pay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들은 경제와 통화 정책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꿔놓고 있다. 중앙은행장들이 선출된 정치인들의 뜻을 비교적 더 많이 따르게 되면서 통화와 재정 당국의 개별적 독립성을 유지하게 해준 인위적인 장벽은 이제 해체되었다. 미래에는 정부가 인프라나 친환경 투자기금 같은 주요 공공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개입해 노동자의 일자리나 소득을 보전하고 기업을 파산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규범 역시 이런 정책들이 일단락된 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상황이 호전돼도 이런 제도를 유지하라는 대중적·정치적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러한 재정과 통화 정책 사이의 암묵적 협력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통상적인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보다는 발권력을 동원한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통화 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 : 정부의 지출이 세수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주류 경제학의 철칙을 깨고,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화폐를 계속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헬리콥터 머니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것이다. 제로 금리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대부분 문제가 많아 쓰려고 하지 않는 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대폭 내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금리 인하 등의 고전적인 통화 수단으로 경제를 부양할 수 없다. 따라서 재정 적자 확대를 통한 부양책을 써야 하는데, 이는 세수가 감소하는 때 공공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MMT는 중앙은행이 인수할 국채를 정부가 발행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중앙은행이 인수한 국채를 되팔지 않는다면 통화 발행량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즉, 통화 발행량 증가를 통해 재정 적자가 조달되는, 일명 재정 적자의 화폐화(monetarization)가 일어나고 정부는 조달한 돈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생각은 매력적이고 실현 가능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기대나 정치적 통제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를 일으킨다. 시민들이 ‘가상의 돈 나무’ 같은 데서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선출된 정치인들은 그런 나무를 점점 더 많이 키우라는 격렬한 대중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이때 인플레이션 문제가 시작된다.

 
디플레이션이냐 인플레이션이냐? 】


https://youtu.be/1Uh69TZ7-9E?si=HUykLtpcUjH5r-vP 

https://youtu.be/g8C7gj8n4Jw?si=mttj5kXTu2EX4Tt7

https://youtu.be/rM-ByEBhz2s?si=xfitakENADwGXI-R

 
【 미국 달러의 운명 】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국적인 힘을 갖는 특권이자 경제적 묘약’ 노릇을 하는 세계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하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누려왔다. 미국의 힘과 번영은 상당 부분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 신뢰 및 대부분 미국 국채 형태로 달러를 보유하려는 해외 고객들에 의해 쌓이고 강화되어 왔다. 그토록 많은 나라와 외국 기관들이 가치 저장 수단이자 무역 거래 도구로 달러를 보유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공고히 해주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해외에서 저렴하게 차입하고, 국내에서도 저금리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이 덕에 미국인들은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할 수 있었다. 또 미국 정부는 최근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 미국이 상당한 무역 적자를 내도 되게 해줬고, 환율 위험을 낮춰줬으며, 미국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더욱 늘려줬다.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가 갖는 지위의 중심에는 중요한 신뢰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즉,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미국 달러와 관련되는 한 미국이 경제를 현명하게 운용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지킬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며 달러를 현명하게 관리함으로써 나머지 국가 모두도 지켜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상당 기간 일부 분석가와 정책 입안자들은 달러가 지배하는 시대가 끝날 가능성을 생각해왔다. 그들은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이 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촉매제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다. 그들의 주장은 두 가지인데, 모두 신뢰 문제의 양면과 관련이 있다. 경제를 현명하게 운용할 거란 면에서 달러 지배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고 급격한 미국의 재정 상태 악화를 지적한다. 그들은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부채가 결국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사태 직전, 미국의 국방비, 연방 부채에 대한이자, 그리고 노인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과 장애인 의료 보조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 및 사회보장 제도 등의 복지후생 정책에 매년 드는 돈을 합치면 연방 세수의 112%(2017년에는 95%)를 차지했다. 이런 지속 불가능한 상태는 포스트코로나, 포스트 구제금융 시대에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지정학적 역할의 대폭적 축소나 증세 내지는 이 두 가지 방법 모두를 통해 중대한 무언가가 바뀌지 않으면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하길 꺼리는 한계점까지 적자가 증가할 것임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기축통화국 지위는 부채 상환 능력에 대한 외국인들의 신뢰가 깨지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세계를 위해 달러를 현명하게 운용할 거란 면에서 달러 지배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미국 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회의론자들은 연준과 미 재무부가 달러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더라도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나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의 처벌 같은 지정학적 목적을 위해 달러를 무기화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궁극적으로 달러 보유자들이 대안을 찾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행 가능한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은 가공할 만한 세계적 금융 패권(국제 금융 거래에서 달러의 역할은 국제 무역에서의 역할보다 눈에는 덜 띄나 훨씬 더 크다)을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들이 달러의 세계적 지배력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단기적으로는 대안이 없다. 중국 위안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중국의 엄격한 자본 통제가 사라지고 위안이 시장을 결정하는 통화로 바뀐 뒤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까운 시일 안에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유로도 마찬가지다. 유로도 달러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유로존 붕괴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영구적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향후 몇 년 안에 그런 의심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 가상화폐의 경우 아직 달러를 대체할 만한 화폐가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결국 달러 패권을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를 디지털 화폐 발행 시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의미 있는 시도는 2020년 4월 말 4개 대도시에서 국가 디지털 화폐시험을 시작한 중국에서 추진됐다. 중국은 강력한 전자결제 플랫폼과 결합된 디지털 화폐 개발 면에서 세계 다른 국가들보다 몇 년 앞서 있다. 이런 실험은 분명 디지털화 확대를 향해 나아가면서 미국의 중개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통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미국 달러 패권의 종식 여부는 미국에서 일어날 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헨리 폴슨(Henry Paulson) 전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달러의 중요성은 국내에서 시작된다. (중략) 미국은 세계적인 신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경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달러의 지위가 위험에 빠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국제적 신뢰도 또한 지정학적 위치와 사회적 모델의 매력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달러가 가지는 ‘과도한 특권’은 세계적인 힘,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생각, 다자간 기관들의 업무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역할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 UC버클리 교수와 ECB 대표들은 “미국이 자기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독자 정책을 더 선호하면서 그러한 역할이 덜 확실하고, 보안 보장도 덜 철저해진 것처럼 보인다면 달러가 누리는 안전 프리미엄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향후 지위에 대한 의문과 의구심은 각국 경제가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현실은 종종 ‘달러로 표시(dollar-denominated)’되곤 하는 부채를 상환할 수 없을 정도로 부채 상태가 심각한 신흥국과 빈국에게 특히 가혹하다. 이런 국가들에게 코로나19 위기는 사회적·인도주의적 고통을 야기하는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주었고, 해결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게 만들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는 선진국이나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 모두를 긴밀한 협력으로 이끌어줄 걸로 기대했던 점진적 융합 과정에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사회적·지정학적 위험이 올라가면서, 경제적 위험이 사회적·지정학적 문제들과 상당 수준 결부된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 CBDC 】

 
https://www.youtube.com/live/asksO2uE5Oc?si=LK3cffewGr54OwFt 

https://youtu.be/hQHAQn_cR4k

https://youtu.be/-peqzYWP51E?si=0c4p1fcKtWo0a-ZX

https://youtu.be/gzSLYNOlEuU?si=To-Sk2gQI6mQK3Pp 

https://youtu.be/fbhMaf_yyxg?si=3F6ycF7_HhD6Aih0

https://www.youtube.com/live/eufXylV8WSw?si=mcGKDR77McAVoxav

■ https://youtu.be/3XDpM5mxw8o?si=OZE1AB49kjrm48xw

https://youtu.be/GcY05bFWkF8?si=3LHyh8T0pRWUp9gE

 

【 블록체인과 분산원장기술 】

 
 ■ 2008년 10월 기본적인 분산원장기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사토시 나카모토(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훗날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이 될 것이다. 그(또는 그녀, 그들)가 쓴 블록체인(수학, 암호학, 컴퓨터공학, 게임 이론의 획기적인 조합의 결과물)에 기반을 둔 매우 혁신적인 결제 기술에 대한 논문은 디지털 화폐의 등장과 함께 디지털 경제와 실문경제 모두에서 가치를 축적하고 교환하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2030년이 되면 분산원장기술 또는 '블록체인'은 온라인 금융 거래는 물론이고 투표 방식부터 상품 제조 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세계 GDP의 약 10퍼센트가 국가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통화에 보관되어 거래되는 미래를. 또는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실시간으로 세금이 투명하고 자동적인 방식으로 징수되는 미래를.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은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블록체인 기술과 그 기술의 도입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동시에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조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으며 거래가 국가 데이터 전송 시스템의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술의 혜택이 완전하게 꽃을 피우는 데 방해 요소가 된다. 이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신뢰와 거래를 재정립할 수 있는 잠재력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집단적 거버넌스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 그리고 많은 '오프라인' 조정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 신뢰 구조 】

 

■ '분산원장기술'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디지털 기록을 중앙 신뢰 기관 없이도 생성하고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암호 기술과 P2P 네트워킹을 현명하게 조합함으로써 블록체인 기술은 정보가 정확하고 투명하게 저장 및 공유되도록 한다. 이에 더해 모든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스마트 계약'도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네 가지 이유로 혁명적이다.
 
첫째,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정보가 완벽하게 복사되고 한계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송함으로써 디지털 경제의 양날의 검을 극복한다. 이런 특징은 정보를 공유하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특별한 가치를 가지거나 확실한 출처가 중요한 무언가를 전송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일례로 디지털 화폐나 민감한 정보가 담긴 서류, 중요한 예술품 등이 있다. 블록체인은 위,변조나 이중 지불의 위험 없이 검증 가능한 특별한 디지털 정보를 만들고 전송할 수 있게 한다. 그를 통해 이른바 '가치의 인터넷(the internet of values)'을 만들게 된다.
 
블록체인의 두 번째 혁명적인 특징으로는 분산원장기술이 중앙 신뢰 기관 없이도 투명성, 검증 가능성, 불변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거래의 세부 사항을 기록하거나 중요 자산의 소유권을 주장할 때 중앙 신뢰 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그 방침에 동의 하기 어려운 상황이 실제로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셋째, 분산원장기술은 프로그래밍된 행위를 가능케 한다. 즉,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자동적으로 거래를 처리, 추적, 검증할 수 있다.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거래나 자동화된 온라인 거래보다는 진일보한 개념이다.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은 강우량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때 지불하는 보험 계약과 프로젝트의 작업량에 따라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자동으로 상금을 수여하는 보상 시스템 같은 상황에서 정보와 자산을 전송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마트 계약을 실행하는 코드 자체가 블록체인에 저장되고 지연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와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넷째, 디지털 원장은 포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블록체인 거래는 기본적으로 투명하고 안전하며 추적이 가능하다. 원하는 경우 익명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적어도 사용자 입장에서 블록체인 거래는 전력도 많이 필요없고 기본적적인 소프트웨어, 저장소, 연결망만 있으면 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소외되었던 개인들과 소규모 참여자들이 디지털 방식을 통해 추적 가능하고 거래 가능한 자산의 생산자로서, 주주로서, 수혜자로서 또는 소비자로서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위에서 언급한 블록체인의 네 가지 특징은 독점적이고 지대 추구적(rend-seeking)인 중앙 중개자가 요구하는 중개료나 여러 간접 비용 없이 경제활동에 따른 보상을 배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분산원장기술은 사람들의 데이터가 중요한 자산이자 잠재적인 책임의 원천이 되는 세상에서 개인 데이터가 창출하는 가치의 일부를 개인들이 되찾을 수 있게 해주며, 적어도 더 많은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준다.
 

【 블록체인, 새로운 개척지 】
 

■ 버크먼 인터넷 사회 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의 프리마베라 드 필리피(Primavera de Filippi)는 현재의 블록체인을 1990년대 초의 인터넷과 비교했다. 당시 기술 전문가들과 기업가들은 인터넷의 잠재적 가치나 무한한 사용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드 필리피에게 블록체인의 가장 혁신적인 역할은 기술 의존적인 사회와 경제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계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여 착취를 방지하고 막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장점과 전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은 만병통치약도 아니며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비트코인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당면 과제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이 최초로 활용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암호 화폐다. 비트코인이 성장하고 확대되면서 수요도 증가한다. 그러면서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핵심 규칙(예를 들면 '블록'의 크기)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참가자들의 의견이 나뉜다. 중앙화된 거버넌스가 없는 상태에서 참가자들은 핵심 규칙의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참가자들의 그룹이 나뉘고 나름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대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블록체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조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라이언 벨렌도프(Brian Behlendorf)가 지적했듯이, 블록체인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분산원장이 그 어떤 대안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충족해주리라고 믿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초기 집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양한 기술적 접근 방식에 동의하고 새로운 기술과 작업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블록체인은 언제 유용할까? 】
 

■ 하이퍼레저 프로젝트(Hyperledger Project)의 브라이언 벨렌도프 이사에 의하면 분산원장은 다음의 상황에서 특히 유용하다. ① 둘 이상의 당사자 사이에 거래가 발생할 가능성이나 충족되지 않은 잠재력이 있을 때 ② 아래의 이유로 인해 거래가 비효율적이거나 불가능할 때 : 많고 다양한 거래 당사자들이 중앙 신뢰 기관이 거래를 효율적이고 중앙집권적으로 중개하지 못할 것이라고 동의할 때 / 독점, 지대 추구, 부패, 투명성의 부재나 제도적 비효율성으로 거래 비용이 상당하고, 불확실성이 시스템에 걸쳐 분산되어 있을 때 / 거래 시 검증이나 관리 비용으로 인해 개인이나 단체가 현존하는 플랫폼에서 제외될 때 / 참가자들이 서로 믿지 못할 정도로 자산 거래가 쉽게 위, 변조되거나 복사될 때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쉽지 않다. 개인이나 조직이 분산원장을 통해 거래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을 포함하여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① 가치의 범주 : 원장에 표시되는 가치의 단위는 무엇일까? ② 기술 구조 :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에 편승하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원장이 안정적으로 거래를 입증하는가? 토큰의 가치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생성되는가? ③ 참가자들은 블록체인의 '시작 조건'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실제 제품을 대상으로 디지털 거래를 할 때, 제품을 어떻게 안전하게 식별하면서 디지털 토큰에 태그하고 연결할 수 있을까?
 
조정 문제는 분산원장이 널리 도입될 때 더 복잡해진다. 다시 말해서 암호화폐 블록체인이 탄소 배출 블록체인 네트워크 등의 연결 가능하도록 다양한 네트워크와 연동되어 상호 운용되는 게 당연히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응용 방식에 통용될 수 있는 표준이 필요하지만 이런 표준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분산원장은 환경에도 외부효과를 끼친다. 블록체인이 불변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거래 내역을 안정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증명(proof-of-work)'이다. 하지만 거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참가자들이 엄청난 양의 컴퓨팅 작업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라는 암호화폐가 활용하는 작업증명 모형에서는 거래가 많을수록 검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따라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 역시 더 커진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외부효과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또 다른 비용이다. 한편 안전하면서 익명으로 프로그래밍된 네트워크는 범죄 비용을 낮춘다는 것도 문제다. 개인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암호화된 스마트 계약의 프로토콜은 범죄조직이 마약 거래, 인신매매, 사기 등과 같은 불법 행위에 악용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술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다. 비트코인 '지갑'의 접근성과 활용성이 향상되고는 있지만, 개인이나 조직이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인센티브는 그리 많지 않다. 빠른 시일 내로 개발되기는 하겠지만 현재 다양한 플랫폼과 직관적인 어플리케이션이 없다는 것도 또 다른 장벽이다.
 

【 신뢰의 기술 】

 
■ 역사적으로 제품이나 거래는 생산 공급망을 거치면서 신뢰가 쌓였다. 물리적 기록이나 전자 기록은 모든 제품의 생산지, 목적지, 수량과 역사를 증명할 수 있도록 기록했다. 이 모든 정보를 생산하고 추적하며 검증하는 일은 은행, 회계사, 변호사, 감사관 및 품질 보증관에게 시간과 노력이라는 막대한 ‘신뢰 세금’을 부과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사라질 수도 있고, 접근이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의도적으로 숨겨질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실제 세계와 디지털 세계 간 경계가 흐려지는 가운데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프로덕트 메모리를 활용해 공급망에 걸쳐 제품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암호의 측면에서 안전한 태깅 시스템과 결합되면 블록체인은 진정한 디지털 ID와 위·변조가 불가능한 기록을 만들 것이고, 공급자와 소비자의 거래는 서로 검증 가능해지고, 더 쉽고 싸질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된 신뢰’는 다음과 같은 완전하게 새로운 제조업 비즈니스 모델을 이끌 것이다. ① 개발자들이 결과물을 보호된 생산 개발 파일 형태로 발표하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시장 ② 제조업체가 제품 관리, 규정, 보증, 리콜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디지털 프로덕트 메모리 시장 ③ 제품 개발, 마케팅, 공급망 관리 및 생산 등의 분야에서 데이터 기반의 통찰력을 함양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반의 데이터 서비스 ④ 제3의 생산업체에 의존하면서 블록체인 기반의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공급망 데이터를 통해 작업을 검증할 수 있는 ‘자산 없는’ 기업들

새로운 세계의 잠재적 승리자는 다음과 같다. ① 법질서와 지식재산권의 개념이 약한 지역의 생산자와 서비스 제공자. 블록체인 기술은 강력한 정부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데이터와 금융 거래를 보다 쉽게 보호한다. ②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업 파트너와 신뢰를 쌓는 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소규모 제품 개발자들이나 원자재 공급업체, 서비스 제공자 ③ 블록체인 가치 사슬 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블록체인 데이터를 생산, 수집하는 기업들 ④ 블록체인에 의해 가능해진 분산형 자율 생산 조직의 서비스 제공자(로봇 및 선박 생산, 파이낸싱이 대표적인 예) ⑤ 고가치의 주문 생산 제품에 특화된 소규모 제조업체

잠재적 패배자는 다음과 같다. ① 간접비용이 높고, 비효율적이며, 낮은 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이들 업체의 전통적이며 복잡하고 느리고 불투명한 사업 방식은 블록체인으로 대체될 수 있다. ② 이커머스와 같이 ‘매칭’이나 ‘시장’을 제공하는 중개 비즈니스 서비스 제공자. ③ 공장 노동자나 단순 사무직과 같은 저숙련 노동자. 블록체인과 3D 프린터, 로봇공학 같은 새로운 기술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제품과 계약을 추적할 수 있다. ④ 회계사, 품질 보증관, 변호사 같은 고숙련 노동자. 블록체인은 복잡한 협상, 추적, 검증 절차를 자동화할 수 있다. ⑤ 금융, 감사 관련 기관. 결제, 위험 관리, 품질보증은 블록체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 신뢰(distributed trust)와 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기술이 결합해 전체 생태계가 급변할 것이다. 초기 블록체인 사용자들은 시스템 통합, 비즈니스 사례, 표준 및 규제와 같은 분야에서 여전히 진화하는 기술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산업 간 파트너십을 구축·발전시키고 적극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고 위험이 낮은 혁신 생태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특징인 영구성과 투명성 덕분에 안전한 디지털 ID를 만들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안전한 디지털 ID는 의료 기록에서 투표, 정부 정책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변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대학교의 암호화폐 및 엔지니어링 연구 센터(Centre for Cryptocurrency Research and Engineering)의 캐서린 멀리건(Catherin Mulligan)이 주장한 것처럼 우리는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전에 잠시 숨을 멈추고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분산원장에 저장된 정보는 개인 키(private key)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 악의적인 정부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중앙 기관의 부재일 것이다. 중앙 기관의 부재는 제도적인 문제 이상이다. 심리적인 문제며 인간이 만든 질서와도 연관되어 있다.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존해 신뢰를 분산시키는 것은 지식의 원천이 인간의 추론 능력에서 현대의 과학 기계로 대체되는 것만큼이나 급진적이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인간의 추론 능력을 촉진할 수 있지만 인간 사회가 과학 기계에 적응하는 데에는 수 세기가 걸렸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결국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신뢰는 더 이상 정치인이나 개인, 또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아니라 수학자들과 디지털 인프라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문제와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다루어야 할 비중 있는 과제이다.

단순한 비즈니스 기술을 넘어서 】
 
■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생산 국가들이 2000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킴벌리에 모였다. 목적은 분쟁 다이아몬드의 확산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들 국가는 품질보증의 의무화를 요구하는 법률과 제도의 확립 및 이 과정을 지원할 입법기관 설립에 동의하였다. 이후 2015년 ‘킴벌리 프로세스’를 지지하는 목적으로 런던에서 에버레저(Everledger)라는 스타트업이 설립되었다. 에버레져의 목표는 블록체인과 머신비전(machine vision) 기술을 결합해 다이아몬드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사기 행위와 맞서는 것이었다.

이처럼 블록체인의 가장 혁신적이고 가치 있는 용도 중 일부는 물리적 세계에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물고기에서부터 순수 예술품까지 공급망 추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인해 분산원장기술은 매우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은 세계 무역 시장의 최대 2.5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위조화폐 시장을 잠재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 머신비전, 생체인식, 3D 프린팅과 나노기술과의 혁신적인 결합은 태깅(tagging)과 트래킹을 가능하게 한다. 이 말은 안전하고 투명한 공급망이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음을 의미한다. 이 기술은 고부가가치 재화와 관련된 산업에서 중요하다.

블록체인은 물리적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상태지만 이미 디지털 생태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가능하게 했다. 2017년 6월 기준으로 7,00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비트코인이 거래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변동성과 가치 조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응용 프로그램은 커다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블록체인 금융 서비스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서도 시장에 대한 접근성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금융 포용성을 확대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이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마지막 구간(last-mile)의 문제는 사용의 편리성과 블록체인 응용제품 및 소비자의 접근성, 블록체인 플랫폼의 안정성이다.

블록체인의 진정한 영향력은 4차 산업혁명의 다른 기술들과 결합되면서 파생된다. 공급망에 대한 위의 논의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블록체인과 사물인터넷의 조합은 흥미로운 미래를 약속한다. 생산 타당성 인증에서부터 계약 협약서까지, 파일 전송과 무역 금융까지 블록체인을 통해 완전한 안정성을 확보한 단대단 서비스 시장이 설계되고 있다. 이 과정에는 개별 플레이어와 컨소시엄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의 등장과 함께 카메라, 프린터 센서 리더기와 같은 실제 검증 부품들(real world verification componentry)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우리는 머지않아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 자금, 거래와 자산 관리는 여전히 분산원장 생태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디지털 ID 관리, 정부와 법률 기술, 에너지, 물류, 홍보 목적으로 쓰여 대중의 관심을 끄는 토큰 등에서도 상당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에서 블록체인의 영향력은 긍정적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안정적이면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거래를 보장해주는 동시에 일상적인 관리 감독과 감사 업무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이보다 복잡하다.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서비스와 데이터를 제공하는 미국 블록체인사(Blockchain社)의 CEO 피터 스미스(Peter Smith)는 이렇게 말했다. “협업의 방식으로 블록체인은 보다 안전하게 가치를 창출하고 전달하면서 사람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다양한 산업에 적용된다면 오늘날 거래를 중개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필요 없어지면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물론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블록체인의 순이익은 발생할 것이다. 중개인과 중개 기관이 입을 손실을 충분히 상회하는 수준으로 블록체인은 소규모 거래와 가치 창출이 가능한 세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알고리즘과 로봇이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는 미래에 분산원장기술은 급격하게 개선된 사회안전망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적인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적절한 규제의 수준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시장 역시 아직 작기 때문에 과도하거나 성급한 규제 규제는 블록체인 산업의 잠재력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앞에는 많은 위험과 과제가 놓여 있다. 아래에 제시된 위험과 과제는 앞으로 수년 동안 우리 논의의 주제가 될 것이다. ①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와 관련하여 상당한 법적 모호성이 존재한다. 특히 서비스 다운이나 거래 실수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환청구 메커니즘과 책임 소재가 그렇다. ②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거버넌스 프레임워크가 요구된다. 블록체인이 금융·실물경제·인도적 목적에 따라 적용되면서 다양한 기술적 문제가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규제 당국은 데이터 인프라 대신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것이 현재의 위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동시에 규제가 전체 시스템에 어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지도 생각해야 한다. ③다양한 블록체인 기술에 걸쳐 데이터의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촉진하는 표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만약 이런 표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블록체인이 데이터 사일로(data silos : 데이터 공유가 일어나지 않는 현상)를 대체하고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 ④ 블록체인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검증할 때 라스트마일 문제는 복잡한 솔루션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솔루션은 공급망 검증이라는 블록체인 사용 목적에 반하는 침입자와 부패를 야기한다. 업계의 리더들은 규제 당국과 대중들의 지원을 받아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고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⑤ 국가 차원의 데이터 규제는 블록체인 프로세스의 일부인 데이터 전송과 충돌할 수 있다. 결제 시스템과 관련된 데이터일 수도 있고 금융 분야가 아닌 데이터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비즈니스 관련 정보나 헬스케어 데이터와 같이 제한된 개인정보일 수도 있다. 분산화라는 블록체인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이런 잠재적 분야를 찾아내어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은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 요약 】

 
①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기록과 정보를 안정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분산원장기술이다. 이런 기록들은 허위로 복사될 수 없기에 해당 디지털 기록과 정보의 가치를 유지해준다.

② 블록체인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앙 기관이 없기 때문에 분산화를 더욱 촉진한다. 대신 블록체인 기술은 다양한 당사자들로 하여금 선의로 행동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 수학적으로 시스템이 해킹될 가능성이 없다.
 
③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 디지털 ID, 암호화 기술과 디지털 식별자(digital identifier)를 활용한 제품 이력의 추적, 그리고 가상의 제품이나 현실의 제품의 출처를 검증해 진품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하는 분야에서 유용하다. 이런 자산의 검증 가능성은 디지털 기기, 서비스 그리고 응용 프로그램의 사용자로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와 완전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한다.

④ 블록체인 기술은 대규모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해결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 등 전통적으로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나눠주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들에는 법률적 모호성, 블록체인 관련 인프라, 표준의 부재, 물리적 제품의 최종 배달 문제, 그리고 국가·국제 데이터 규제가 있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환경문제, 범죄 조직의 악용, 분쟁 처리 방식과 같은 해결되지 않은 외부효과가 있다.
 

【 새로운 컴퓨팅 기술 】

 
■ 1947년에 발명된 트랜지스터의 크기와 생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면서 디지털 컴퓨팅 기술은 3차 산업혁명의 범용 기술이 되었다. 새로운 컴퓨팅 기술은 계속해서 중요한 기술로 활용될 것이다.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값이 저렴한 유비쿼터스 디지털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탱하는 척추가 될 것이며, 컴퓨팅 능력의 혁신적 발전 또한 예상되기 때문이다 컴퓨팅 기술의 발전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소재와 아키텍처(architectures)구조의 혁신이 바탕이 되었다. 이런 기술 혁신은 중앙화된 클라우드 컴퓨팅, 퀀텀 컴퓨팅, 신경 회로망, 생체 데이터 저장 장치(biological data storage)와 메시 컴퓨팅(mesh computing)으로, 그리고 다시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새로운 유형의 암호 기법(cryptography)으로 이어졌다. 이런 기술 발전은 사이버 보안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면서, 자연어 처리 능력을 개선하고 있고 헬스케어와 물리 및 화학 분야에서의 엄청난 효율성 향상을 약속한다. 새로운 컴퓨팅 기술은 우리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컴퓨팅 기술에서 파생되는 혜택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유연한 거버넌스가 없다면 중대한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영향력이 확대되고 대중화되어 가는 무어의 법칙 】

■ 인텔의 공동 창립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의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에 의하면, 1960년대 중반부터 1제곱인치당 트랜지스터의 수가 약 18개월에서 2년마다 두 배가 된다고 한다. 컴퓨터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작아지고 성능은 빨라지면서 컴퓨터값은 연평균 30퍼센트 하락했다. 무어의 법칙이 없었다면 매우 작은 프로세서와 저장 장치를 필요로 하는 모바일 컴퓨팅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모바일 서비스 산업도, 그리고 세계 인구의 43퍼센트가 스마트폰을 보유할 정도로 막대한 모바일 산업의 영향력도 없었을 것이다. 연구원, 기술 사업자, 그리고 기업은 놀라운 속도를 자랑하는 컴퓨터를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왔다.

지금까지 비용 절감과 성능 향상이 놀라울 정도로 진행되었지만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설령 무어의 법칙이 지속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약 40억이 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지만, 디지털 정보 기술은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강력한 동인인 점은 분명하다. 무어의 법칙을 유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반도체 생산자와 신소재 과학자는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것이 물리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트랜지스터 속도가 증가하고 전력 사용량이 감소한다는 ‘데너드의 법칙(Dennard’s law)’은 이미 10여 년 전에 끝났다. 지금의 트랜지스터는 이미 바이러스보다도 작다. 나노미터는 상업용 표준으로 가장 작은 트랜지스터 크기다. 이보다 더 작은 10나노미터 트랜지스터는 2017년부터 생산에 돌입했으며 인텔은 향후 5년 내에 7나노미터 트랜지스터를 생산할 예정이다. 참고로 인간 머리카락의 직경은 5만 나노미터다.

터널효과(tunneling effects), 트랜지스터의 비효율성을 가져오는 누전 등으로 인해 5나노미터는 실리콘으로 만든 트랜지스터의 물리적 한계로 인식된다. 국제 반도체 기술 로드맵(International Technology Roadmap for Semiconductors)은 ‘반도체 산업에서 수평으로 집적하는 방식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말한다. 트랜지스터를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쌓는 기술이 해결책이 될 수 있으나, 기능을 저하시키는 온도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반면 신소재는 크기 제한의 문제를 해결해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더욱 줄일 수 있다.

버클리 연구진은 탄소나노튜브와 이황화 몰르브덴을 사용해 1나노미터 회로로 작동하는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1제곱인치당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를 계속해서 늘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기 전에 상업적으로 이미 불가능해질 것이다. 무어의 2법칙이라고 알려진 록의 법칙(Rock’s law)에 의하면 새롭고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반도체 제조 설비 비용은 4년마다 두 배 증가한다. 생산 기계가 더욱 정밀해지고 오작동 비율을 줄여야 할 만큼 고성능의 기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터 데닝(Peter Denning)과 테드 루이스(Ted Lewis)가 지적한 바와 같이, 록의 법칙은 새로운 제조 설비 가동이 경제적으로 가능해지려면 새로운 세대의 반도체 시장 규모가 적어도 기존 시장의 두 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 생산 과정이 더욱 복잡해지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지면서 반도체 집적밀도가 두 배가 되는 기간이 기존 2년에서 2년 6개월로 늘어났다.

컴퓨팅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개선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전자전기공학연구소IEEE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동안 전자전기공학연구소는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보고서들을 발간하면서 반도체 투자를 이끌어왔다. 미래에 그들은 ‘새로운 무어의 법칙을 만들고 시장에 새롭고 참신한 컴퓨팅 기술을 내놓기’ 위해 ‘기계와 시스템에 대한 국제 로드맵(International Roadmap for Devices and Systems)’을 만드는 데 다시 집중할 예정이다. 신소재, 새로운 아키텍처, 시스템을 통해 성능과 효율성을 높이는 새로운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 이는 보다 많은 사람과 조직이 저비용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이점을 누리게 되리라는 점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성능 향상의 한 방법은 보다 특수화된 프로세서에 집중하는 것이다. 컴퓨팅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 특정한 용도로 반도체를 특수 제작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디지털 컴퓨팅은 표준화되고 대량생산된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지배했다. 이런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어떤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동일한 작업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데이터 집약적인 기능의 경우 표준화된 중앙처리장치(CPU)는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오늘날 중앙처리장치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는 화면상의 정보를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의 중요성과 적용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맞춤형 컴퓨팅 아키텍처에 대한 새로운 유형의 수요가 발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구매자 중 하나인 구글은 딥 러닝 알고리즘용 텐서 처리 장치(tensor processing units)를 대규모로 생산했다. 구글은 텐서 처리 장치를 2016년 세계 바둑 챔피언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프로그램에 사용했다. 새로운 메모리 구조와 처리 구조는 ‘인공지능 엑셀러레이터(AI accelerators)’라고 알려진 새로운 종류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인공지능 엑셀러레이터는 많은 머신 러닝의 중심에 있는 인공신경 회로망의 기능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이런 새로운 컴퓨팅 아키텍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대규모 응용 프로그램에 필요한 속도, 비용,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이점을 제공한다.
 
공급을 늘리고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은 우리가 관리해야 할 많은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단순히 더 좋은 성능이나 더 빠른 속도, 더 많은 트랜지스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계와 데이터가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우리는 컴퓨팅 기술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상황과 경우에 따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기반 응용 프로그램은 수초 내로 전 세계에서 동시에 활용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공공 안전이나 교통 시스템의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엑사바이트 수준의 많은 데이터를 수천분의 1초나 심지어 백만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 내에 컴퓨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현재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은 크기가 아니라 속도나 지연 속도(latency), 에너지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하지만 물리학과 재료과학의 발전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디지털 컴퓨터에 기반을 둔 프로세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퀀텀 컴퓨팅이라고 부르는 가장 유망하면서도 가장 파괴적인 컴퓨팅 기술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 퀀텀 컴퓨팅 : 파괴적 잠재력과 현실적인 어려움 】

■ 안정적이고 강력한 퀀텀 컴퓨터 모형은 4차 산업혁명 기술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기술 중 하나가 될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퀀텀 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이상한 이론을 활용하면서 컴퓨팅을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전통적으로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하고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1과 0으로 구성된 2진법으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 대신에, 퀀텀 컴퓨터는 퀀텀 비트(quantum bits)로 운영된다. 퀀텀 비트는 줄여서 큐비트(qubits)라고도 불린다. 1과 0으로 제한된 비트와는 다르게 큐비트는 1과 0 둘의 중첩이 존재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다양한 상태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한다.

양자물리학의 재미있는 현상에는 ‘양자 얽힘(entanglem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여러 큐비트가 서로 연결되어 한 큐비트의 양자 상태를 측정하면 연결된 다른 큐비트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퀀텀 컴퓨터는 확률적 지름길을 만들 수 있는 퀀텀 알고리즘을 활용할 수 있으며, 현대의 디지털 컴퓨터가 해결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유형의 수학 문제에 대해 수용 가능한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한 예는 대수의 소인수를 찾는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로는 빠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암호 기법(encryption technologies)이 필요하다. 또 다른 예로 많은 변수가 포함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이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운영 효율성이나 로지스틱 관련 문제에 적용하거나, 비구조화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데 유용하다.

또한 퀀텀 컴퓨터는 원자와 다른 입자의 움직임과 같은 다른 양자계(quantum systems)를 비정상적인 조건에서 더 정확하게 모델링할 수 있다. 마치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 두 개의 입자를 빛보다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빅뱅 이후의 상황을 재현할 목적으로 스위스에 만든 시)처럼 말이다. 퀀텀 시뮬레이션을 통해 퀀텀 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가 하기 힘든 어려운 계산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런 계산은 더 스마트한 신소재, 클린 에너지 기계, 신약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다. 따라서 현실화된 퀀텀 컴퓨팅은 4차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는 많은 기술과 시스템을 구동시킬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퀀텀 컴퓨터는 1982년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이 최초로 제시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이론적으로 존재했으나, 보편적인 퀀텀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공학적으로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퀀텀 컴퓨터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말하는 것은 여전히 추측에 가깝다. 큐비트의 수를 늘리고 유지하려면 절대 0도에 가깝게 냉각된 환경처럼 극한 조건에서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오늘날의 선도적인 퀀텀 컴퓨터들은 매우 적은 큐비트(IBM이 생산하는 퀀텀 컴퓨터는 5큐비트에 불과하다)를 가지고 있거나 용도가 굉장히 제한적이다(양자 냉각 방식으로 구동되는 디웨이브의 경우) 두 경우 모두 성능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퀀텀 컴퓨터의 현실적인 잠재력을 보여줄 정도로 빠르게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이론 또한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퀀텀 알고리즘과 퀀텀 기계 학습 분야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속해서 제시되고 있다.

퀀텀 컴퓨팅 기술에 대한 물리적이고 공학적인 문제점들이 해결되면 더 많은 도전 과제가 등장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보안이다. 은행 정보와 이메일 계정을 해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송 계층 보안을 이용하는데, 이 기술이 보호하는 2048비트의 정보를 해독하는 데 현대의 컴퓨터는 130억 년이 걸린다. 그러나 1994년 수학자 피터 쇼어(Peter Shor)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퀀텀 컴퓨터는 현재의 많은 암호화 접근법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 정도로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 우리는 온라인 거래와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사용하는 표준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퀀텀 컴퓨터의 공격에 취약하지 않은 기존 접근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새로운 유형의 양자 암호화(quantum cryptography)를 만들기 위해 퀀텀 효과(quantum effects)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퀀텀 컴퓨팅 기술은 현재의 컴퓨터를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퀀텀 효과가 일상적인 정보 처리의 영역에서 제공하는 이점은 수학이나 화학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 제공하는 이점에 비해 크지 않다. 더욱이 현재 우리의 물리학 지식으로는 퀀텀 컴퓨터가 지금의 컴퓨터보다 더 싸지거나 더 작아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퀀텀 컴퓨터의 잠재적인 영향력은 막대하다. 하지만 퀀텀 효과는 - 최소한 5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올 때까지는 - 전문적인 컴퓨팅 기술의 고비용 분야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 작고 빠른 컴퓨터의 막대한 영향력 】

 
■ 마크 와이저(Mark Weiser)는 1991년 “가장 근본적인 기술은 형체가 없다. 그런 기술은 일상 속에 녹아들어 일상과 분간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무어의 법칙이 지속되어 모든 디지털 기기들에게 적용됨에 따라 디지털 컴퓨터는 더 이상 별도의 물체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자동차나 전자 제품, 가전 제품의 중요한 부품 그 이상이다. 컴퓨터는 이제 의류에도 삽입되고 있으며 우리 주변의 도로와 가로등, 다리와 빌딩과 같은 인프라에도 장착된다. 우리는 이제 컴퓨터가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

새로운 센서와 기계 학습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다. 음성 명령 시스템과 자연언어 능력의 발전으로 우리는 이제 스크린과 키보드에서 해방되고 있다. 신체 언어, 손과 눈의 제스처를 이해하는 센서는 우리의 의식적인 의도와 무의식적인 의도를 읽어 컴퓨터, 휠체어, 의족과 같은 기계를 움직일 수 있게 한다. 페이스북은 2017년 4월 기계 학습 전문가들과 신경 보철 전문가들을 포함한 60명의 연구진이 생각만으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컴퓨터에 접속하는 다양한 기술들은 새로운 멀티태스킹 및 정보 처리 방식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는 신체적으로도 우리의 일부가 되고 있다. 스마트 시계, 인텔리전트 이어버드, 증강현실 안경과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우리 몸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이식 가능한 마이크로칩으로 점점 대체되고 있다. 이런 기술 발전은 통합 치료 시스템부터 인간의 신체 능력 강화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이오 컴퓨팅(biological computing)의 발전으로 특수 제작 된 마이크로칩을 유기체에 이식해 맞춤형 유기체를 만드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바로 바이오해킹(biohacking)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화와 소비 행위이다. MIT 연구진은 센서, 메모리 스위치, 회로가 인간의 장내 세균에 코딩될 수 있다는 것을 시연했고, 이는 우리의 신체가 염증성 장 질환이나 대장암을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잠재적 혜택에는 위험과 과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 자신과 환경 사이의 양방향 정보의 흐름이 가능해지면서 지속적으로 대역폭을 확장하고 압축 기술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가 대두됐다. 디지털 세계에서 생성된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고밀도 장기 저장이 가능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바로 DNA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2012년에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처치(George Church) 교수는 최고의 플래시 메모리가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의 10만 배가 넘는 데이터를 DNA에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기술은 온도와 환경에 상관없이 안정적이었다. 처치 교수는 “사막이든 당신의 정원이든 어디에다 떨어뜨려 놓아도 40만 년 후에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특히 극한 상황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세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컴퓨팅 시스템이 항상 가동되도록 유지하려면 전력난의 위험이 제기된다. 이런 전력난은 중대한 과제를 야기한다. 기초적이고 수동적인 고장 대처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을수록 이런 위기는 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전례 없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 확실하다. 이미 더 작고 빠른 컴퓨터들은 인간의 행동양식을 바꾸어놓았다. 예를 들어 테이블에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만으로 상대와의 대화에 대한 몰입도가 낮아지고 대화의 세세한 내용을 기억할 가능성 역시 낮아진다. 또한 소셜미디어는 젊은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컴퓨팅 기술이 계속해서 확장되면서 환경은 더 큰 외부효과에 노출될 것이다. 선진국에서 데이터 센터는 이미 전체 전기 사용량의 2퍼센트를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 센터가 시간당 700억 킬로와트를 소비하는데, 이 수치는 호주의 1년 전기 사용량보다 더 크다. 연구자와 기업이 컴퓨팅 기술에서 미래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컴퓨팅 방식과 하드웨어의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프로세서가 개발될수록 자원의 지속가능성이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현재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클라우드’가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더 크고 더 효율적인 중앙 데이터 센터가 속속 등장하면서 보안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데이터를 어디에, 어떻게 저장할지, 관련 비용이 얼마나 증가할지에 대해서 창의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만약 데이터를 사용하는 이유가 실시간으로 인사이트를 얻고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많은 기기들이 분산된 상태로 연결된 네트워크인 메시 컴퓨팅(mesh computing)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데이터 센터는 대규모 데이터를 유지·관리할 수 있지만, 메시 컴퓨팅은 분석과 의사 결정을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그러면서 높은 수준의 효율성을 유지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로 접속의 평등이 있다. 새로운 컴퓨팅 기술 발전과 활용은 크고 부유한 시장, 풍부한 인적 자본, 대규모 투자 자금을 확보할 능력이 있는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적게 들고 다양한 환경에서도 작동이 가능한 컴퓨팅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런 컴퓨팅 기술은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고 기온 변화가 심한 곳에서도, 심지어 방사능 위협이 도사리는 환경에서도 작동되어야 한다. 한 예로, 전 세계 사람들이 컴퓨터를 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저가의 고성능 컴퓨터인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가 있다. 라즈베리 파이는 2012년 처음 출시된 이후 1,200만 대가 팔렸다. 다양한 조건에서 사용 가능한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컴퓨팅 기술에서 파생되는 혜택의 분배 방식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혁신 기술의 혜택은 대개 선두주자들에게 집중된다.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범용 기술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공유하려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이는 꼭 공정한 세금의 문제만이 아니라 경쟁 정책과 소비자 권리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컴퓨팅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서게 되면 ‘슈퍼 플랫폼’을 활용해 모든 가치 체인상에서 방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일례로 특수화된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접속하는 능력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 차이를 가져올 것이고, 그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쟁자들은 결국 파산할 것이다.

끝으로 제도와 기술에 대한 신뢰가 위협받고 있다. 컴퓨터가 우리의 일상에 녹아들어 우리의 일상과 분간할 수 없게 되면서 사생활 보호는 시민, 정부, 기업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필수가 되었다.
 

【 요약 】


① 무어의 법칙(트랜지스터 크기와 값의 지속적인 감소)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섰고 트랜지스터의 속도가 증가하고 전력 사용량이 감소한다는 데너드의 법칙은 이미 깨졌다. 재료과학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그저 기능을 높이려는 시도는 언젠가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며 새로운 유형의 컴퓨팅 기술이 실현되어야 한다.

② 컴퓨팅은 단순히 프로세싱 능력(즉, 얼마나 많은 트랜지스터가 있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우리는 스피드, 근접성, 지연 속도, 에너지 소비를 고려하면서 컴퓨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때문에 퀀텀 컴퓨팅, 포토닉스, 메시 컴퓨팅과 같은 대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더 작고 빠른 컴퓨터의 확산은 도시 환경, 소비재, 집, 심지어 우리의 몸까지 포화 상태로 만든다. 이런 컴퓨터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면 글로벌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④ 데이터 센터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중앙화된 공간이 되었으며 아카이브 데이터(archived data)에 대한 접근권과 컴퓨팅 파워를 제공한다. 앞으로 반응형 컴퓨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속도와 적시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계간 연결된 분산형 컴퓨팅이 요구될 수 있다. 이 말은 컴퓨팅 기술력의 기반과 용도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⑤ 우리는 새로운 컴퓨팅 기술이 사회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컴퓨팅 기술이 직면한 문제다. 우리가 기술력에 주목하는 것처럼 접근성, 포용성,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